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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빛(Lumen Opaticum)’의 만화경, 혹은 생동하는 재앙의 회화: 한재열 론




곽영빈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2021년 연말 3층 건물 전체를 자신의 작업만으로 가득 채웠던, 한재열의 인상적인 서울 개인전의 핵심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2010년 아이티에 파병되었던 작가가 몸소 목도했 던 끔찍한 지진의 (12년이 지나서도 여전한 것으로 간주되는) 여파? 관객의 눈을 마치 더듬을 것처럼 매혹시키던 다채로운 색채와 그 질감? 혹은 작가가 되풀이해 강조해온 괴테의 『색채론』이 갖는 (탈역사적?) 함의? 눈, 코, 입은 물론, 몸도 없이 부유하던 얼굴이 드디어 육체를, 아니 다른 얼굴-몸들과 함께 ‘모임/무리 Gathering’를 이루게 되었다는 안도감? (혹은 생경 함?) 이들 각각을 선택적으로 강조하고 해석하거나, 전체를 나열하기만 해도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한데 모일 수 있었는지, 다시 말해 전시라는 하나의 ‘무리, 또는 모임’을 어떻게 ‘내재적으로’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해결 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전시가 작가의 그간 작업들을 단순히 한 자리에 그러 모은 ‘회고전’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은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 요소들을 재배치하고 그 관계를 촘 촘하고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이번 전시를 통해 드러난 한재열의 작업세계와 그 감각의 논리가 갖는 당대적 함의를 보다 명확히 하려는 시도이다.


    1. 모임을 모으는 수집가
    A Collector Gathering Gatherings


    물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실지로 전시는 층별로 구분 가능하다. 1층은 ‘Passersby’ 연작들로, 그가 “얼굴 없는 얼굴들”이라 부른 다채로운 색채의 얼굴그림들이 손바닥보다 조금 큰 소품에서 2미터에 육박하는 크기로 펼쳐졌다. 하나의 프레임/캔버스에 단 한 개의 얼굴이 들어있던 1층에 비해, 2층의  ‘The Gathering’ 시리즈는 하나 이상의 얼굴들이 함께 육체를 입고 보다 다채로운 색깔들로 등장한다. 이를 ‘1층=개인 vs. 2층=군상’이라는 대립, 혹은 이행으로 요약하고 싶은 유혹이 들 법하다. 1층과 2층 작업의 바탕을 이루는 흑백의 크로키와 스케치들로만 채워진 3층을 둘러보고 나면 이러한 이해는 더욱 선명해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The Gathering, a Man with a Bottle>(2021)에서 출발해보자. 이번 전시의 포스터 이미지이기도 한 이 그림은, 1층 작업들을 둘러본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보이게 배치된 작업이다. 1층 전시장 입구에 들어선 관객을 그 크기로 압도하던 세 편의 작업(‘Schauen,’ ‘Flesh Off,’ ‘Difference and Repetition’)이 ‘Passersby’ 시리즈를 대표한다면, 이 그림은 작가의 최신작인  ‘The Gathering’ 시리즈는 물론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제처럼 캔버스 중앙에는 한 남자가 술병을 들고 서 있고, 화면 왼쪽 배경에서 두 명의 남자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다. 즉 이들은 제목 그대로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작가는 이들 인물들을 서로 다른 사진과 영화 속에서 떼어왔기 때문이다. 전시 개막 후 한 이탈리아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가 ‘몽타주’에 비유한 이 방식1)은 인물들 사이 뿐 아니라 개별 인물에게도 적용된다. 방금 언급한 술병 든 남자부터가 몽타주의 결과물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은 모여 있다고 할 수 없지만, 동시에 모여 있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 이 작업이 이번 전시를 대표한다면, 이러한 이율배반은 어떤 함의를 갖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번 전시의 제목 절반이  ‘The Gathering’이란 사실이다.2) 즉 <The Gathering, a Man with a Bottle>은 그 자체로  ‘Gathering’의 결과인 인물, 혹은 개체들을 다시 ‘gather’한 작업인 것이다. 독일어로 Sammlung이란 ‘모으는 행위’로서의 ‘수집’ 뿐 아니라, 그렇게 모인 결과로서의 ‘모임’이나 ‘컬렉션’ 즉 소장품을 동시에 뜻하는데, 이런 중층적인 의미에서 한재열은 ‘수집가 Sammler/collector’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모임’의 이러한 레이어나 겹침효과가 아니라, 모임 이전에, 이러한 ‘모임’을 요청한 가능성의 조건으로서의 ‘분산’, 즉 ‘흩어짐’일 것이다. 실지로 벤야민에 따르면, “위대한 수집가는 처음부터(ursprünglich), 세상의 물건들이 자신을 발견하는 혼동과 분산에 끌린다.”3) 즉 근원적인 의미에서 수집, 혹은  ‘Gathering’이란 혼동과 분산에 대한 독특한 감각이나 경험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집가에게 고유한 지각의 특성 중 하나로, 벤야민은 “그의 수집물이 끊임없는 흐름(ständigem Fluten) 속에 있다”는 감각을 든다. 이는 “우리에게 ‘지속적인 것»Bestehendes«’은 아무것도 없으며...모든 것이 우리를 습격한다(alles stieße uns zu)”는 지각방식과 연동되는데, “위대한 수집가에게 사물이 바로 그렇다. 사물들은 그를 습격한다.”4)

    아마도 우리는 “지속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모든 것이 우리를 습격한다”는 감각을, 한재열이 아이티에서 얻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고다르와 파로키의 ‘몽타주’에 대한 작가의 환기가 시사하듯, 수집에 대한 그의 감각은 다른 동시대적 조건들과도 연동되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 지극히 무질서한 수집물처럼 보이는 캐롤 보브(Carol Bove)의 <La traversée difficile (The difficult crossing)>(2008) 사물 배열방식을 디지털 검색엔진의 자의적 결과와 병치시켰던 클레어 비숍의 관찰5)이나, “서로 다른 사물들이 공동의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면서도 그렇게 이질적인 요소들이 “언제든 떨어져 나갈 위험에 처한 것 같은” “무장해제적 특성”을 갖는 형식으로서의 “집계자(aggregator)”에 대한 데이비드 조슬릿의 포스트 디지털 시대적 묘사를 떠올려보라.6)

    그렇다고 해서, 한재열이 “얼굴 없는 얼굴”이라 이름 붙인 ‘Passersby’ 시리즈들을 동시대의 포스트 디지털적 조건의 회화로 간주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21세기의 얼굴’이란 부제가 달린 그의 흥미로운 책(『페이스월드 Faceworld』)에서 마리옹 질리오(Marion Zilio)가 환기했던 “세계의 페이스북화”의 효과를 떠올려보자. 그에 따르면 “초상이 얼굴로 미끄러”([l]e glissement du portrait au visage)”진 결과 초상은 “비-얼굴(non-visage)”이 되는데, 그는 이렇게 “내면성 없는 순수 외면성([p]ure extériorité sans intériorité)”을 공교롭게도 “얼굴 없는 얼굴들(visages sans visage)”이라 부른다.7) 다른 한 편, 한재열의 작업을 특징짓는 특유의 두터운 마티에르와 붗질, 그리고 다채로운 색채의 대조는 그가 거주하는 독일의 신표현주의 전통(e.g. 게오르그 바젤리츠)과의 비교를 빈번한 것으로 만들었다. 물론 이 계보는 윌렘 드 쿠닝으로 대표되는 추상 표현주의를 매개로 프란시스 베이컨에게서 정점에 오른 뒤, 아드리안 게니(Adrian Ghenie)의 ‘파이 연구(Pie Studies)’ 시리즈를 통해 스스로를 갱신한 전후 서구 회화의 ‘얼굴해체(undoing face)’의 전통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한재열의 작업은 이러한 국제적 자장 속에서 자신들만의 변주를 수행해온 김병관, 서원미, 박경진, 임순남 등의 국내 작가들 작업과도 겹치지 않는다.8) 그렇다면 한재열은 어디에 놓이는 것일까? 일단 이렇게 외상적 경험(traumatic experience)이나 국제적인 계보, 혹은 동시대의 매체적 조건을 작업의 원인 또는 맥락으로 환기하는 것은, 작품과 작품 외적 조건의 관계를 일방향적인 영향관계의 차원으로 단순화할 위험에 여전히 노출된다는 점을 환기해둘 필요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대부분의 글이나 인터뷰에서 습작 시기의 에피소드처럼 짧게 언급되고 말지만, 아이티에서 돌아온 한재열이 아무런 연고 없는 아일랜드로 떠나, 거기 1년을 머물며 매일 지나가는 사람들을 크로키했다는 사실은 이런 맥락에서 보다 섬세한 주목을 요한다. 물론 연고가 없는 타지에 장기간 머무는 것 자체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아이슬란드에 처박혀 차기작을 완성하는 일본인 소설가나, 프랑스에서 학위 과정을 밟는 브라질 유학생, 혹은 슬로베니아에서 연구년을 보내는 호주 학자를 떠올려보라. 타지에 가서 해당 지역의 문화나 공동체의 습성을 ‘참여관찰’하는 인류학자들의 실천들을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재열이 한 일은 이들 모두와 구분된다. 그는 자신이 익숙한 한국땅을 떠나 아는 사람도, 자신이 아는 이도 없는 곳에 가서는, 해당 지역의 독특한 역사와 풍습에도 집중하지 않고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얼굴들을 그려왔다. 이는 자신이 익숙치 않고, 좀처럼 알아보기 힘든 얼굴들의 흐름 속에 자신을 던져넣는 일이면서, 무엇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패턴화되고 익숙해질 수 있는 얼굴들을 흐르게 하고, 그러한 “끊임없는 흐름” 속에 자신을 집어넣으려는 엄격한 ‘제어’, 또는 ‘자기 구속(self-restraint)’에 가깝다. 이런 의미 의미에서 그것은 ‘자유로운 영혼의 방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자발적 구속’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구속을 통해 그는 얼굴에 대한 의식적 인식과 관습적인 ‘재현’의 감각으로부터 멀어진다. 다음은 이 시기에 대한 작가 자신의 묘사인데, 약간 길지만 전체를 인용할 필요가 있다.


“외로운 감정에 저항하려는 듯 매일 가장 사람 많은 거리로 나갔다. 그렇게 습관처럼 지나가는 얼굴을 응시하고, /그려 모았다/. 페인팅은 의식이 너무 개입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드로잉은 서명하는 것처럼 의식하지 않고 그리기로 정해 두었다. 크로키를 통해 자연스럽게 재현으로부터 멀어졌다. 수집한 얼굴 드로잉을 회화로 옮겼다. 얼굴은 이미 눈, 코, 입이 있는 머리의 앞쪽 부분으로서 특성을 잃었다.”9)



    길진 않지만, 그의 작가 노트는 매우 섬세한 용어와 개념 구분이 눈에 띄는데, 여기서도 그는 “지나가는 얼굴을 응시하고 /그려 모았다/”고 쓴다. “매일 끊임없이 떠오르고 사라지는 거리의 얼굴을 기록하는 일은 /떠나는 것을 보존하고 붙잡는 일/이면서 그려진 존재로 대체하는 일”이라고 덧붙이면서, 그는 자신이 “표본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처럼 /수집한 얼굴/”을 언급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자발적 구속’을 통해 그가 ‘모으’고 ‘수집’한 최종 결과물이 다름 아닌 ‘색채들의 다발’이라는 사실의 함의다. 작가가 “정체성이 무너지고 해체된 이 얼굴에 남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본” 결과는 예를 들어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해부학적 뼈대나 변치 않는 본질, 서로 다른 피부색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작업과 관련해 습관적으로 소환되는 아이티 지진 참사의 희생자들을 떠올려주는 끔찍한 이미지들도 아니었다. “아이티에서 집단 매장된 시신들의 신체를 환기”하며 “인간이 사멸한 인간과 얼굴이 지워진 얼굴을 번갈아 본” 작가의 눈에 새롭게 현현한 것은, 다른 게 아닌 두터운 질감의 다채로운 색채 다발들이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 차마 볼 수 없는 것을 본 눈먼 증인의 생존
    Survival of a Blind Witness to the Unwatchable


    아직 영어나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판타지에 대하여’라는 벤야민의 짧은 글은, 이 지점에서의 방향감각 설정에 적절한 도움을 준다. “나타나고 변화하는 색깔과 하강/몰락의 관계는 가을에 드러난다”고 운을 떼면서, 그는 썩어가는 시체에서 볼 수 있는 푸른빛, 즉 인광(燐光)을 그 예로 든다.10) 그에 따르면 이렇게 “더 깊은 색조(Die tiefere Färbung)는 “땅에 고유한 몰락(den eigentlich irdischen Untergang)”에 수반된다. 물론 시체의 부패과정에는 변색 뿐 아니라 형태 자체의 변형도 포함된다. 벤야민이 “생성[Werden]은 조-형[Gestalt-ung]...을 통해 말하고, 색조를 통해 지나간다/사라진다[Vergehen]”고 덧붙인 건 이런 맥락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탈색’되는 것은 “땅이 아닌(nicht irdische) 것- 다시 말해, 영원하지 않은- 유형의 몰락”과 관련되는데, 벤야민은 죽음을 통해 “창백”해지는 사람과 “겨울에 창백해지는 자연”을 사례로 든다.11) 그의 이 절묘한 관찰은 한재열이 아이티에서 목도했던 지진이라는 참사, 즉 ‘몰락,’ 또는 ‘파멸’의 현상과 그의 그림을 특징짓는-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회색’을 포함하는- ‘다채로운 색채’라는, 언뜻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대립이 어떻게 (시차를 두고) 그의 작업 안에서 작동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적절한 힌트가 된다.

   죽음이라는 몰락의 계기를 통해 오히려 다채로운 색채가 펼쳐진다는 독특한 아이러니 뿐 아니라, 이 글은 이번 전시의 부제이기도 한 ‘방관자 Bystander’라는 라이트모티프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같은 글 후반에서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쓴다. “그는 [얼굴이] 붉어진다- 그는 사라지길 원한다/죽고 싶다.(»Er wird rot- er möchte vergehen« “He becomes red- he would like to disappear/he wants to pass away [vergehen].” 이 문장의 후반에 사용된 “Vergehen”이란 동사는 우리가 좀 전, “생성[Werden]은 조-형/형-성[Gestaltung]을 통해 말하고, 색조를 통해 지나간다/사라진다[Vergehen]”는 문장에서 본 것과 같다. 앞의 문장이 ‘죽음’이라는, 비가역적(irreversible) 현상 혹은 상태와 직결되는데 반해, 이번에 관건이 되는 건 ‘부끄러움’이라는 정동이다. ‘부끄러워 죽겠다’는 표현이 환기하듯 부끄러움이 죽음과 묶이곤 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 표현이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부끄러움은 죽음으로 쉽게 이어지기 쉽지 않는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부끄러움이란 무엇일까? 벤야민이 이 단상을 끄적인지 14년 후인 1935년, 유대인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탈출에 대하여’라는 초기 글에서 이 질문에 자기 방식으로 답한다. ‘부끄러움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 걸맞을법한, 도덕적 질서나 정신적 차원에 대한 논의와 거리를 두면서 레비나스는 그것이 무엇보다 “우리의 몸과 관련된다”고 강조한다.12) 물론 곧이어 덧붙이듯 그는 이 둘이 분리되기는커녕 분리의 불가능성과 연관된다고 지적하는데, 부끄러움과 몸의 이러한 뒤얽힘은 부끄러운 자신의 몸을 어떤 방식으로도 숨기거나 지울 수 없다는 사태와 관련된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벌거벗음’을 환기하는 건 옷을 입었다는 사실과도 배치되지 않는다)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자신의 꼬리를 자르고 도망칠 수 있는 도마뱀과 달리, 인간은 그럴 수 없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몸에 “결박되어(être rivé à soi-même)”, “탈출”할 수 없는 상태가 부끄러움인 것이다.13)

    레비나스의 이 글에 대한 주석에서 아감벤은 부끄러움을 “주체화이기도 하고 탈주체화이기도 한...이중운동”이라고 다시 쓴다. ‘창피해 숨고 싶다’거나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는 한국어 표현이 환기하듯, 부끄러움은 주체를 자기소멸의 욕망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삭제의 욕망은 대부분 실현되지 않으며, 주체는 그렇게 남겨진 잔해에 가까운 무더기로서의 자신을 목도한 ‘증인’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이것이 “주체는 부끄러움 속에 자신의 탈주체화밖에는 다른 내용을 갖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곤궁/부조리[dissesto], 주체로서의 자신의 상실에 대한 증인”이 된다는 말의 의미이다.14)  

아이티에서의 경험에 대한 작가 자신의 다음과 같은 회고는 이러한 맥락에서 적절한 공명을 얻는다.


“운이 좋을 뿐인 나는 재난에서 대체로 멀리 있었다. 그 먼 거리를 용케 유지했다. 이 따금 이야기로 전해 듣고, 스크린을 통해 더욱 멀리서 보는 것은 특권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불똥 튀듯 재난의 표면에서 떨어져 잠시 머물렀다. 만지고 온도를 느끼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방관자, 관조자, 투어리스트로서 걸어 다닐 수 있었다.”15)

 

물론 이러한 작가의 고백을,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감’ 또는 생존자들이 재앙 이후 느끼는 죄책감과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절멸수용소의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를 환기하면서, 들뢰즈와 과타리가 재앙과 피해자들 ’앞’16)에서 느끼는 “인간이라는 부끄러움(la honte d'ètre un homme)”17)이라 불렀던 것에 가깝다. 이를 통해 어떤 일이 벌어진다. 안전하고 온전한 주체의 지위로부터 ‘탈주체화된 주체’가 자기 스스로의 “증인”이 된다는 의미에서 주체의 완벽한 소멸은 이뤄지지 않고, 무엇인가가 남는 것이다. 타자들의 사라짐, 혹은 그것의 흔적을 (단지) 목도했다는 부끄러움을 통해 사라지(기를 원하)는 주체로서의 자신, 혹은 그 수치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것. 그것은 아마도 블랑쇼가 그 말의 우주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재앙이 종종 재앙과 구분불가능해지는 것으로서의 글쓰기와 갖는 내재적 관계에 대한 책인 『재앙(으로서)의 글쓰기 L'Écriture du désastre』에서 했던 다음의 말, 즉 “글을 쓴다는 것은...부재하는 단어들을 통해, 기억할 수 없는 것, 경험되지 않은 것의 증인과 관계를 맺고, 주체 안의 빈터 뿐 아니라 빈터로서의 주체, 즉 모든 장소 밖에서 벌어진 죽음의 임박 속에서 주체의 사라짐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적었던 것에 상응하는 것일지 모른다.18) 혹은 좀 더 적확하게, “재앙은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 모든 것을 붕괴시킨다.”19)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번 전시장 1층을 가득 메웠던, ‘군상’ 시리즈 이전의 ‘방관자’ 얼굴 연작의 중핵, 즉 “얼굴 없어진 얼굴에 여전히 얼굴이 있다”는 기이한 사태의 (얼굴과 눈이 없는) 진면목(眞面目)일 것이다.



“인종, 나이, 성별, 장애 따위의 특질이 사라졌다. 윤두서의 초상20)처럼 덩그러니 목까 지 그려진, 얼굴 없어진 얼굴에 여전히 얼굴이 있다. 표정 없이 감정이 있고, 타인의 얼굴을 비운 자리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21)


    카프카 이후 많은 이들이 지속적으로 환기했듯, K가 죽은 이후에도 ‘수치는 살아 남아야만 했다는 듯’ 보였다는 『소송』의 결말 없는 결말처럼, 부끄러움은 종종 죽음과 절멸 이후에도 잔존한다.22) 물론 한재열의 작업에서 얼굴을 오작동하게 한 원인 제공자는 지진이라는 참사 자체가 아니라 그가 목도한 이름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그러한 무덤으로서의 땅 위에서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교접하던 돼지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23) 이런 의미에서 그가 “타인의 얼굴을 비운 자리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공간”이라 묘사한 “얼굴 없는 얼굴들”이란, 단순히 관객의 감정이입이나 상상이 자유로운 대상이라기보다 세상과 우리를 돌아볼 눈이 사라진 피해자들과,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닌 ‘눈먼 증인’으로서의 작가와 관객들의 시선이 구분불가능하게 겹쳐지는 지점에 가깝다. 이러한 주체와 객체, 피해자와 방관자의 혼융은 알렌카 주판치치가 토모 스타니치(Tomo Stanič)의 표현을 빌어 강조했듯, 차마 “볼 수 없는 것(the unwatchable)”이란 ‘도덕적’으로 외설적이라거나 보이지 않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는 무엇이 볼 수 있는 것 속으로 녹아 들어간” 것이라는 지적과도 공명한다.24)


    3. ‘어두운 빛’의 만화경
    Kaleidoscopes of ‘Lumen Opaticum’


    지금까지 우리는 한재열이 아이티에서 목도한 지진이라는 참사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얼굴 없는 얼굴”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특히 부끄러움의 계기를 통해 살펴봤다. 주체가 자신의 불완전한 소멸에 대한 ‘증인’으로 남게 되는 이 ‘절멸’의 과정에 대한 증언의 경험을, 작가는 아일랜드의 행인들이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흐름(ständigem Fluten)”속에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구속’함으로써, ‘충실한 재현’이 아닌 크로키를 통해 ‘반복’(하려)했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가 도달한 다채로운 색채 다발들의 위상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는 벤야민의 짧은 언급을 통해 그 관계의 단초를 짚어보려 했다. 하지만 전시장 1층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니 널따란 유리를 통해 밖에서부터 우리를 압도하던 이 전시에 대한 우리의 시각적 경험을 여전히 ‘죽음’과 ‘재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요약하는 건- 기만이 아니라면- 또 다른 ‘망각’이 아닐까? 재난과 다채로움? 다채로운 재난? 양립불가능해 보이는 이 대립과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작가가 몇 번씩 탐독했다고 환기한 괴테의 『색채론』과 대면할 필요가 있다. 괴테가 환갑을 지나 발표한 이 역작에 내재한 독특한 특징들이 이번 전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것의 함의는 무엇인지를 짚을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주지하듯 괴테의 색채 개념은 세 겹으로 펼쳐진다. 인간의 육체와 연동된 ‘생리색’이 첫 번째이고, 그 다음이 ‘물리색’, 그리고 가장 객관적인 색이라 할 ‘화학색’이 마지막이다. 화학색은 노랑, 파랑, 빨강, 주황, 녹색, 보라의 여섯가지로 구성되는데, 특히 중요한 색은 노랑과 파랑이다. 겨우 스물 셋의 나이에 발표해 전유럽의 베스트셀러가 됐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1774)의 주인공 베르테르가, 소설의 결말에서 자살에 이를 때까지 입었던 바지와 연미복 자켓이 각각 겨자색에 가까운 노랑과 푸른 색이었다는 사실을 환기해보자. 괴테에 따르면 노랑은 빛에서 나오고, 파랑은 어둠에서 나오는 색이다. 여기에 녹색과 빨강, 주황과 보라색이 덧붙여져 그의 6원색을 이루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그에게 ‘어둠’이 ‘빛’의 부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빛’과 어둠’을 위계적으로, 또는 신학적인 시각에서 선과 악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다시 강조하지만, 괴테는 흰색과 검은색, 혹은 검은 그림자나 그것의 부재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 노랑과 파랑을 양축으로 삼아 색채 일반에 대해 얘기한다. 이러한 괴테의 독특한 색채관은 “색 자체가 일종의 그림자 [Die Farbe selbst ist ein Schattiges (skieron)]”라는 규정에서 일종의 정점에 이르는데, 나는 이점이 한재열의 작업에서, 재난을 통해 풀어 헤쳐진 다채로운 색채들을 감각적으로 재직조하는 일종의 근원적 공리라고 본다.25)

    일단 1층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압도하던 세 편의 작업을 떠올려보자. ‘Passersby’ 시리즈의 확장판(Expansion)‘이라 할 이 세작품은 각각 Schauen,’ ‘Flesh Off,’ ‘Difference and Repetition’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셋은 1층의 나머지 작업들에 비해 눈과 입을 비교적 분명히 식별할 수 있는 편이고, 이중 흑백에 가까운 ‘Flesh Off’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촉각적인 물감의 마티에르와 색의 다채로운 사용이 두드러진다. ‘본다’는 뜻의 ‘Schauen’에서 얼굴의 형태로 ‘모여’있던 색채의 다발은 ‘Flesh Off’, 즉 피부로서의 살을 떼어내자 회색빛을 띠지만, ‘Difference and Repetition’에서는 다시 회복된다. 물론 보다 자세히 말하면, ‘Schauen’에서 유지되던 삼원색(빨강, 노랑, 파랑)의 동적 균형은 ‘Difference and Repetition’에서 빨강을 제외한 노랑과 파랑이 최소화되면서 사라진다. ‘Flesh Off’에서 상실되었던 다채로운 색감의 회복에 만족해야한다는 것일까? 일단 얘기해 둘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선명한 차이들이 2층의  ‘The Gathering’ 시리즈에서는 훨씬 구조적인 방식으로 변주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The Gathering, The Red Sofa>(2020)에서 출발해보자. 이 그림은 2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관객을 정면에서 맞이했던 <The Gathering, a Man with a Bottle>의 왼편 벽에 걸렸던 작업인데(관객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방의  <The Gathering, Blue Shadow>와 등을 맞댄다. 여기에 주목할 점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물론 나는 작가나 큐레이터의 ‘의도’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얼핏 무의미해 보이는 이 점의 함의를 설명하려면, 우선  <The Gathering, The Red Sofa>가 ‘대립,’ 더 정확하게는 ‘뒤집힘’이나 ‘전복’에 가까운 논리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짚어야 한다. 얼핏 볼 때, 수직으로 선 캔버스 중앙에 보이는 인물은 한 명의 남성이다. 하지만 보다 자세히 보면, 한 명이 더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남성 왼쪽에 누군가가 물구나무 세운 것처럼 더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이를 처음엔 보지 못했다. 이를 (시각적) 무의식의 문제로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보색(complementary colors),’ 즉 색의 문제이기도 하다.  <The Gathering, Blue Shadow>는 어떤가? 이 그림은 2층의 왼쪽방 벽을 기준으로 보면 관객의 등 뒤에 위치하는데, 위에서 환기했듯 이 벽 뒤에  <The Gathering, The Red Sofa>가 있었다. 다시 해당 방을 기준으로 보면  <The Gathering, Blue Shadow> 정면에 서 있는 그림은  <The Gathering, Pilgrims>다. 한 마디로  <The Gathering, The Red Sofa>와  <The Gathering, Blue Shadow> 사이의 벽을 제외하면, 이 세 그림은 일렬로 서 있는 것이다.

    물론 소재 차원에서  <The Gathering, Pilgrims>는  <The Gathering, Blue Shadow>과 공유하는 것이 거의 없다. ‘순례자들’이라는 기독교적 함의를 시사하는 제목을 괄호치고, 보이는 것들만 담담히 기술해보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안드레이 루블레프 Andrei Reblev>(1966)에 기반한 이 그림은, 추수 끝난 가을의 밭을 배경으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지나는 세 명의 사람들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캔버스 상단의 후경에 위치된 일련의 짚단들을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추수 끝난 가을밭을 지나는 순례자들의 이미지에 비해  <The Gathering, Blue Shadow>의 구성은 단촐하다. 영어 Y자에 가까운 형태로 천장과 벽이 나뉘는 캔버스 한가운데에 여성으로 보이는 (얼굴이 가면에 가까운) 인물이 서 있고, 그 우측에 남성이 서 있다. ‘푸른 그림자’라는 제목에 걸맞게 검푸른 그림자를 배경으로 선 이 둘의 지배적 색채는 노란색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들도 각각 푸른색을 가지고 있다. (여성은 거의 검은 색에 가까운 푸른 치마를, 남성은 매우 밝은 빛의 푸른 신발을 신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둘은 무엇을 공유하는 것일까? 그것은 색이다. 핵심을 선취해두자면, 이 두 그림은 2층에서 노랑과 파랑이라는 괴테 색채론의 양극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The Gathering’ 시리즈 전체의 뼈대를 형성한다. 미리 말해두지만, 색의 차원에서 두 그림의 주된 인상은 비슷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노랑의 인상이 강한  <The Gathering, Pilgrims>에 비해,  <The Gathering, Blue Shadow>는 제목 그대로 푸른색이 도드라진다. 하지만 위에서도 지적했듯, 후자는 두 중심 인물이 입은 옷 덕분에 노랑의 인상도 강하다. 사실 옷뿐만 아니라, 정오에 사선으로 내리쬐는 햇빛에 노출된 듯 캔버스의 전면부는 노랑색이 주도한다. 음영이 없진 않지만, 덕분에 배경의 ‘푸른색 그림자’와 전경의 노랑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대조는  <The Gathering, Pilgrims>에 없다. 맨 우측의- 성별을 알 수 없는- 인물이 입은 치마가 가장 푸른 편이긴 하지만,  <The Gathering, Blue Shadow>의 여성이 입은 단색조의 검푸른 치마에 비하면 붉은색이나 초록, 노랑 등이 옅게 뒤섞여 강렬한 대조의 인상을 주진 않는다. 또- 화면 중앙에서 살짝 왼쪽에 배치된- 가운데 인물 역시, 노랑색이 바탕을 이루긴 하지만 주황과 파랑의 순서로 일종의 색채 피라미드를 이루어 아주 밝은 인상을 주지 않는다. 화면 프레임에 막 입장한 듯한 맨 왼쪽 인물 또한 노랑이 바탕이긴 하나, 덧칠된 초록과 주황색이 두드러진다.

    전시장에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The Gathering, Pilgrims>의 바탕 전반을 차지하는 노랑색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이 일반적인 의미에서 ‘밝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고 반복해 피력한 바 있는데, 나는 이 기이한 인상이 앞에서 언급한 ‘빛과 어둠/노랑과 파랑의 양극성’과 내재적으로 관련된 효과라고 생각한다. 푸른색이 제목에 전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랑의 인상이 강했던  <The Gathering, Blue Shadow>처럼, 아니 일종의 보색에 상응하는 작업으로서  <The Gathering, Pilgrims>는 노랑이 바탕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밝음보다는 푸름, 즉 어둠의 인상을 갖는다는 것이다. “명암이 물체를 물체로서 나타나게 한다면 빛과 그림자는 색의 밀도를 보여준다”26)는 괴테의 전언은 정확하게 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단순히 빛과 어둠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빛과 어둠에서 나왔다고 괴테가 본 노랑과 파랑은, 이런 의미에서 그가 정의한 가시성의 세계 전체를 한정짓는다.

    이러한 논점은 우리가 앞에서 환기했던  <The Gathering, The Red Sofa>를 다시 불러들인다. 나는 이 작업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The Gathering, Blue Shadow>와 “등을 맞댄다”고 썼다. 동시에 나는,  <The Gathering, The Red Sofa>의 캔버스 중앙에 있는 인물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며, 이 둘은 위아래가 “뒤집혀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우리가 노랑과 파랑의 양극적 관계를 중심으로 상술한  <The Gathering, Pilgrims>와  <The Gathering, Blue Shadow>의 관계를 덧붙이면 보다 명확한 그림이 그려진다. 그 그림이란 이들이 모두 일련의 ‘양극성’과 ‘전복’, 즉 뒤집기의 관계를 갖는다는 점과 관련된다.  <The Gathering, The Red Sofa>에서 뒤집혀 있던 두 남성, 혹은 한 남성의 전복적 거울 이미지는, 노랑과 파랑의 양극성을 2층 전체에서 가장 선명하게 구현한  <The Gathering, Blue Shadow>와 “등을 맞댄다.”  <The Gathering, Blue Shadow>를 정면에서 마주 보며 2층 방의 ‘양극’을 이룬  <The Gathering, Pilgrims>는, 전자와 공유하는 노랑과 파랑 사이의 중간 색채를 보다 미세하게 드러내고, 이를 통해 노랑이 배경 전반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밝다’는 인상이 전체를 압도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러한 독해를 뒷받침해주는 역설적인 사례가 바로  <The Gathering, Procession>(2018)이다. 2층 방 중앙에서  <The Gathering, Blue Shadow>를 등지고  <The Gathering, Pilgrims>를 봤을 때, 우측 벽면에 설치된 첫번째 작업인 이 그림은 2층 왼쪽 방에 배치된 그림들 중 유일한 흑백, 또는 회색계열 작업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설명과 어떤 관계를 갖는단 말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는 회색에 대한 괴테의 독특한 규정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괴테에 따르면, “이 가시적인 색은 언제나 흰색보다는 더 어둡게, 검은색보다는 언제나 더 밝게 보인다.”27) 근대회화사에서 회색이 갖는 예외적 위상과 함의에 대한 흥미로운 책에서 프랜시스 게린이 적절히 덧붙였듯, 괴테는 회색을 빛과 어둠의 혼합으로 규정했다.28) 이는 “색 자체가 일종의 그림자 Die Farbe selbst ist ein Schattiges (skieron)”라는 괴테 자신의 또 다른 핵심 규정과 연동하는데, 이 규정은 “lumen opaticum”, 즉 문자 그대로 읽자면 ‘어두운 빛’이라는 키르허의 표현을 다듬은 것이다.29) ‘모든 색을 합치면 흰색이 된다’는 주장을 “황당무계”하다고 기각하면서, “모든 색은 혼합되더라도 그림자로서의 보편적인 성격을 보존한다”고 괴테는 단언한다.30) 흑백, 또는 회색조의  <The Gathering, Procession>은  <The Gathering, Pilgrims>나  <The Gathering, Blue Shadow>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변주한 노랑과 파랑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근원적인 의미에서 결국 같은 내재성의 평면에 있는 작업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1층 전시장의 ‘Passersby’ 시리즈 세 그림들, 즉 <Schauen>, <Flesh Off>, <Difference and Repetition>의 관계와도 내재적으로 공명하는 것이다.

    이 공명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보다 근원적으로, 한재열의 작업 전반에 대한 우리의 지난한 분석이 괴테의 『색채론』과 만드는 내재적인 공명은 어떤 함의를 갖는 것일까? 괴테의 『색채론』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쓰인, 색채에 대한 초기의 심원한 단편들에서 벤야민은 “모든 회화는 필연적으로 그리고 상관적으로 판타지이자 동시에 모상”이라고 단언한 뒤, “이념의 빛은 창조적인 토대의 어두움과 맞서 싸우며, 이 싸움 속에서 그 빛이 판타지의 색깔 유희를 산출해낸다”고 쓴다.31) 여기에 그는 “판타지의 현상들은 “형상화된 것의 탈형상화”이며, “판타지가 형상화를 해소하는 유희를 벌인다는 사실”이 “모든 판타지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덧붙인다.32)

    이들은 ‘얼굴’이라는 관습적 형상을 극단적으로 ‘탈형상화’함으로써 ‘초상화’라는 미술사의 전통적 토대를 창조적인 어둠에 몰아넣고, 이를 통해 “판타지의 색깔 유희를 산출”하는 한재열의 작업을- 예를 들어 베이컨 이후의 계보 속에서- 선명하게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판타지적 탈형상화가 “경험의 파괴적인 붕괴”와 구분된다는 점이다.33) 이 점을 놓치면 안된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이는 한재열의 작업을 ‘아이티’라는 ‘재앙’의 진앙지로 끈질기게 환원하려는 게으른 독해들과 우리의 작업을 구분해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차이점은 괴테 색채론의 보다 근원적인 함의를 통해 음미 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색 자체가 일종의 그림자 Die Farbe selbst ist ein Schattiges (skieron)”로 재규정된 세상에 대한 괴테의 성찰이, ‘어둠과 밝음’이라는 이항대립에 근거한 관습적인 색채 구성 및 세계관 자체를 물구나무 세우기 때문이다. 이런 엄격한 의미에서- 즉 ‘재앙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그림그리기의 관습적 토대가 ‘재앙에 처한 그림’이라는 의미에서- 한재열의 작업은 ‘재앙의 회화’다. 하지만 이는 그의 그림들이 체현하는 다채로운 색채의 생동감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색채들이 “이념의 빛”이 “창조적인 토대의 어두움과 맞서 싸우”는 “싸움”에 수반되는 새로운 결과, 즉 “판타지의 색깔 유희”이기 때문이다.


   4. “얼굴 없는 얼굴”에서 마스크로
   From “Faces without Faces” to Masks


    이러한 독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상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못한 다른 작업들을 위의 작업들로 ‘환원’하지 않으면서 넓은 의미의 변주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내준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군상’ 혹은 다수성의 문제일 것이다. 다소 도발적인 결론을 미리 선취해두자면, 한재열의 작업 세계에서 예를 들어 <The Gathering, a Man>(2021)처럼 단 한 명이 나오는 작업이나  <The Gathering, a Ritual>(2021)처럼 수백명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그려진 작업은 궁극적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The Gathering, JGP>(2018)나  <The Gathering, a Family>(2021), 혹은  <The Gathering, a Peak>(2020)처럼 1과 다수 사이에 놓이는 다수의 형상들이 등장하는 작업에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수의 차이가 무의미하다고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강조하려는 요점은, 이 글의 초반 <The Gathering, a Man with a Bottle>(2021)에 대해 지적했던 역설에 이미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즉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술병 든 남자 자체가 몽타주의 결과물이라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이 작업의 인물들은 모여 있다고 할 수 없지만, 동시에 모여 있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라고 해서 모임이 없다고, 혹은 단수라고 할 수 없으며, 여럿이 함께 있다고 해서 모임이라고, 혹은 복수라고 할 수는 없다는 역설. 이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를 환기하면서, 작가가 “사람들이 모이면, 사람이 지워졌다. 모여든 사람들은 어떤 목소리가 되어 말했다. 목소리는 다시 이미지로 변했다. 둘, 다섯, 열, 백, 백만 모두 저마다의 형태와 냄새와 소리와 촉감이 달랐다”고 적었던 것과 정확하게 공명하는 것이다. 여기에 다시금 덧붙여야 할 것은, 이러한 단수와 복수의 구분불가능성을 작가는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괴테적 색의 차원에서, 다시 말해 생리적이면서도 물리적이며, 동시에 화학적인 분포의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중층적인 구별의 미묘함은, 방금 환기했던 2016년 한국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경험과 더불어, 그의 작업을 더이상 2010년 아이티의 외상적 경험으로만 환원해 설명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Passersby’ 시리즈와  ‘The Gathering’ 시리즈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반드시 강조되어야 할 차이점 중 하나는 ‘얼굴 없는 얼굴에서 가면으로’의 이행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가면으로서의 얼굴이라는 후자의 특징은 <The Gathering, a Man with a Bottle>의 중심 인물이나 <The Gathering, Blue Shadow>의 여성의 얼굴에서 가장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만, 이는  ‘The Gathering’ 시리즈 전반을 관류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가 탐독했던 한 연구서에서 독일의 저명한 미술사 연구자인 한스 벨팅이 환기한 관찰과도 공명하는 이 논점은34), 방금 위에서 언급했던 ‘개인과 군상’, 혹은 ‘단수와 복수의 구분불가능성’에 상응하는 작가 나름의 업데이트라 볼 수 있다. 이는 “얼굴은 더 이상 영혼의 창이 아니라, 벽보, 슬로건, 명찰, 또는 하나의 ‘배지 badge’”가 되었다는 자크 오몽의 진단과 공명하는 것이면서,35) <어떤 얼굴 A Certain Face> 시리즈로 대표되는 임순남의 초상화 대부분이 인터넷 상에서 떠도는 일련의 ‘셀피 selfie’들을 기반으로 삼는다는 사실과도 연동한다.36)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한재열의 작업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독특한 특징들을 통해 오롯이 자기의 영역을 확보한다. 그것은 조형과 채색의 영역 양자에서 전통적인 재현의 질서가 여전히 공회전 중인, 위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재규정되어온 회화의 역사적 계보를 21세기에 어떻게 갱신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그만의 응답이면서, 동시에 더욱 끔찍한 재난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온 인류의, 헤겔이 “악무한(schlechte Unendlichkeit)”이라 불렀던 흐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로 우리를 속절없이 데려다 놓는 것이기도 하다. 재앙 이후, 재앙에 빠진 회화를 생동하는 색채로 재배열하는 그의 다음 작업에 대한 기대를 거둘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 작가는 고다르, 에이젠슈체인, 그리고 하룬 파로키를 환기한다. “I place images side by side the way directors like Goddard, Eisenstein, and Harun Farocki would, as a montage.” ‘In Conversation with Han Jaeyeol: On Art Born from Disasters, the Psychology of Face-less Portraits, and the Importance of Color,’ Art Nomade Milan 2021.11.19. https://artnomademilan.it/han-jaeyeol/?lang=en
2) 제목의 나머지 절반인 ‘Bystanders’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술하겠다.  
3)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V, hrsg. Rolf Tiedemann und Hermann Schweppenhauser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72), 279 (H4a,1); Walter Benjmain, The Arcades Project, p. 211.
4) Ibid, p.272; The Arcades Project, p. 205.
5) Claire Bishop, ‘Digital Divide: Contemporary Art and New Media.’ Artforum Vol. 51, No.1 (Sep.2012)
https://www.artforum.com/print/201207/digital-divide-contemporary-art-and-new-media-31944
6) David Joselit, in Hal Foster, Rosalind Krauss, Yve-Alain Bois, Benjamin H. D. Buchloh, and David Joselit, Art Since 1900: Modernism, Antimodernism, Postmodernism, 3rd ed. New York: Thames and Hudson, 2016, pp. 57-58. 조슬릿은 ‘몽타주’ 및 ‘아카이브’가 구성요소를 수집하고 작동시키는 방식을 지극히 ‘동질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집계자’ 개념과 구분하려 애쓴다. 하지만 고다르, 특히 파로키가 자신의 작업에서 세공한 몽타주들의 이질성을 고려할 때, 그리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 보기는 어렵다. 고다르와 파로키의 작업을 대립시키는 독해의 한 예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Georges Didi-Huberman, Remontages du temps subi: L'Oeil de l'histoire 2, Paris: Editions de Minuit, 2010. Esp. pp. 173-180.
7) Marion Zilio, Faceworld: Le visage au XXI siècle, Paris: PUF, 2018, p. 10.
8) 물론 이 지점에서 환기해둬야 할 것은, 베이컨이 “초상화가”라 해도 그는 “얼굴의 화가”가 아니라 “머리의 화가”라 강조했던 들뢰즈의 섬세하지만 결정적인 구분이다. “Portraitiste, Bacon est peintre de tétes et non de visages.” Gilles Deleuze, Francis Bacon: logique de la sensation. Paris: Seuil, 1981/2002, 27쪽. 이들 셋이 이루는 흥미로운 자장에 대해서는, 서원미와 박경진의 전시에 대해 썼던 다음의 글들을 참조하라. 곽영빈, 「(De)Facing 」, 『Facing』 (보안여관1942, 2017.11.24.-12.3), 2018 전시도록; 곽영빈 「미학적 돌파와 범람의 현장: 박경진, <현장> 전시 리뷰」, 『월간미술』, 2019년 1월호.
9) Emphasis is mine.
10) ‘Zur Phantasie’, Gesammelte Schriften, Vol. VI, pp. 121-122. 이하의 인용은 이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11) 이는 시체의 인광이 “땅에 고유한 몰락”의 사례라는 설명과 배치된다기보다는, 인간과 자연 안에서 “땅에 고유한” 것과 “땅이 아닌” 것이 있다는 쪽에 가깝다.
12) “[L]a honte se rapporte en premier lieu à notre corps.” Emmanuel Levinas, De l'évasion, Montpellier: Fata Morgana, 1982, p.112; Emmanuel Levinas, On Escape, trans. Bettina Bergo,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3, p. 64.
13) De l'évasion, p.113. On Escape, p. 64.
14) 조르조 아감벤,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문서고와 증인』, 정문영 옮김, 새물결, 2011, 159쪽. 이 문장의 한국어 번역본 후반부는 “자기 자신의 부조리, 주체로서의 자신의 완벽한 소멸에 대한 증인”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탈리아어 원문과 불어, 그리고 영어본 어디에도 “완벽한 소멸”에 해당되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이는 당연한데, 레비나스가 환기했듯, 주체로서의 소멸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Nella vergogna, il soggetto non ha, cioè, altro contenuto che la propria desoggettivazione, diventa testimone del proprio dissesto, del proprio perdersi come soggetto. Questo doppio movimento, insieme di soggettivazione e di desoggettivazione, è la vergogna.” Giorgio Agamben, Quel che resta di Auschwitz: L'archivio e il testimone, Torino: Bollati Boringhieri, 1998, p. 126; “Dans la honte, le sujet a donc pour seul contenu sa propre désubjectivation: témoin de sa propre débâcle, de sa propre perte comme sujet. Ce double mouvement – de subjectivation et désubjectivation en même temps –, telle est la honte...” Giorgio Agamben, Ce qui reste d’Auschwitz. L’archive et le témoin, [Homo sacer III]. Paris, Seuil., p.114.
15) 한재열, ‘작가노트,’ 2021, 2쪽.
16) Gilles Deleuze et Felix Guattari, Qu’est-ce que la philosophie? Paris, Éditions de Minuit, 1991, p.103. Gilles Deleuze and Felix Guattari, What is Philosophy? trans. Hugh Tomlinso and Graham Burchell,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p.108.
17) Ibid., p.102. What is Philosophy? p.107.
18) “Ecrire, certes, c'est [...] par les mols én leur absence, être en rapport avec ce dont on ne peut !é souvenir, témoin du non-éprouvé, répondant non seulement au vide dans le sujet, mais au sujet comme vide, sa disparition dans l'imminence d'une mort qui a céj â eu lieu hors de tout lieu.” L'Écriture du désastre, Paris: Gallimard, 1980, p.186. Maurice Blanchot, The Writing of the Disaster, trans. Ann Smock, Lincoln: University of Nebraska Press, 1986, p. 121; 모리스 블랑쇼, 『카오스의 글쓰기』, 박준상 옮김, 그린비, 2012, 204쪽. 한글번역은 대폭수정했다. 더불어, ‘désastre’를 일관되게 ‘카오스’로 옮긴 이 책의 번역방침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을 덧붙여둔다.
19) L'Écriture du désastre, p.9; The Writing of the Disaster, p.1; 『카오스의 글쓰기』, 22쪽. 번역수정.
20) 주지하듯, 몸에서 얼굴만 잘라낸 듯 그려낸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은 당시까지의 관습을 고려할 때 매우 대담한 것으로 간주된다.
21) 한재열, ‘작가노트,’ 3쪽.
22) Maurice Blanchot, L'Écriture du désastre, p.89. Maurice Blanchot, The Writing of the Disaster, trans. Ann Smock, p.53. Agamben, Remnants of Auschwitz, p. 104. 아감벤,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156-157쪽.
23) 작가노트의 첫 페이지에, 작가는 온라인에서 구할 수 있는, 매체의 참사 사진들에서 가져온 두 개의 이미지를 병치시켰다. 하나는 매립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수백구의 시체들이며, 다른 하나는 같은 땅 위의 다른 곳에서 클로즈업으로 포착한 교접하는 맷돼지 두 마리이다. 하지만 이러한 배치의 효과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초적인 쾌락에 탐닉하는’ 돼지에 대한 도덕적 단죄인지, 아니면 도덕과 무관하게 충동에 근거한 동물의 생식행위에 작가와 우리의 부끄러움을 투사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 모호함은 들뢰즈와 과타리가 카프카의 동물 소설들을 염두에 두면서 “비열함(l’ignoble)을 면하려면 동물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사유 자체는 때로 살아 있는, 그것도 민주적인 인간보다는 죽은 동물에 더 가깝다”고 강조했던 지점을 떠올려준다. “Nous ne sommes pas responsables des victimes, mais devant les victimes. Et il n'y a pas d'autre moyen que de faire l'animal (grogner, fouir, ricaner, se convulser) pour échapper ã l'ignoble : la pensée même est parfois plus proche dion animal qui meurt que d'un homme vivant, même démocrate.” Gilles Deleuze et Felix Guattari, Qu’est-ce que la philosophie?, p. 103; Gilles Deleuze and Guattari, What is Philosophy?, p.108.
24) “[S]omething that ought not (do so) melts into visibility.” Alenka Zupancic, ‘Melting into Visibility,’ in Unwatchable, eds. by Nicolas Baer, Maggie Hennefeld, Laura Horak, Gunnar Iversen, New Brunswick, Rutgers University Press, 2019, p.49,
25) 놀라운 것은 이러한 ‘빛과 어둠의 양극성’이라는 괴테의 테제가 21세기 과학의 실험성과들과도 공명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저명한 과학철학자인 올라프 뮐러(Olaf L. Müller)가 자신의 두툼한 연구서와 관련 논문들을 통해 강조했듯, 괴테의 관찰들은 과학적으로도 설득력 있는 것으로 확인되기 시작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음을 보라. Johannes Grebe-Ellis & Oliver Passon, “Goethe’s Farbenlehre from the Perspective of Modern Physics,“ Dialogue vol. 1 (Sep. 2020), pp. 50-59; Olaf L. Müller, ‘Goethe's Polairty of Light and Darkness,’ Journal for General Philosophy of Science/ Zeitschrift für Allgemeine Wissenschaftstheorie 49(4), 2018, pp. 581-598; Olaf L. Müller, Mehr Licht: Goethe mit Newton im Streit um die Farben, S. Fischer, Frankfurt a.M. 2015) 괴테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말을 제목으로 삼은 올라프의 책(『더 많은 빛: 색에 대한 괴테와 뉴튼의 논쟁』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의 분량은 무려 544쪽에 달한다. 지금껏 과학자라기보다는 예술가인 저자의 주관적 사변으로 치부되었던 괴테의 주장이 우리가 알고 있다고 간주했던 세상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도전한다면, 한재열의 그림은 이를 이미지로 수행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리라.
26) 괴테, 『색채론』, no. 852, 268쪽.
27) 괴테, 『색채론』, no. 556, 193쪽.
28) Frances Guerin, The Truth is Always Grey: A History of Modernist Painting,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8, p. 26.
29) 괴테, 『색채론』, no. 69, 68쪽. “Die Farbe selbst ist ein Schattiges (skieron); deswegen Kircher vollkommen recht hat, sie Lumen opacatum zu nennen.” “Colour itself is a degree of darkness; hence Kircher is perfectly right in calling it lumen opaticum.” Geothe, Theory of Colours, p. 31.
31) Walter Benjamin, ‘Zur Malerei’, Gesammelte Schriften, Vol. VI, pp. 113; 발터 벤야민, 「판타지에 대한 생각」, 김남시 옮김, 『현대독일미학: 감각, 기억, 사유의 변증법』, 이학사, 2017, 100
32) Walter Benjamin, ‘Phantasie’, Gesammelte Schriften, Vol. VI, pp. 114; 「판타지」, 위의책, 101쪽.
33) ibid., p. 115; 「판타지」, 위의책, 102쪽.
34) “When we see the ”real image“ we never see the true face, but always a proxy for it- or, if you will, a mask.” Hans Belting, Face and Mask: A Double History. Thomas S. Hansen and Abby J. Hansen, trans. Princeton and Oxford: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7, 246.
35) Jacques Aumont, Du visage au cinema, Paris: Editions de l’Etoile, 1992, p.186.
36) cf. 곽영빈, 「핏기없는 얼굴과 핏기 도는 얼굴 사이의 시소: 임순남 작가론」 (2021).







Kaleidoscopes of ‘Lumen Opaticum’ or Vibrant Painting in/of the Disaster: On Jaeyeol Han s Oeuvre



Yung Bin Kwak
Visiting Professor
Yonsei University


    What was the gist of Jaeyeol Han’s impressive solo exhibition in Seoul toward the end of 2021, filling up the entire building with his own works from the ground to the 3rd floor? The aftermath of the terrifying earthquake the artist bore witnessed to in person in Haiti where he served his military service (still considered as powerful as it was after 12 years)? Colors and matières whose vibrant quality was so palpable and fascinating, bordering on groping our very eyes? (Transhistorical?) Implications of Goethe’s Theory of Colours, which Han has repeatedly underlined? Or a feeling of relief (or unfamiliarity?) in the wake of seeing faces without eyes, noses, and mouths, finally forming full-fledged bodies, or rather, a ‘Gathering’ with other ‘faces-bodies’? One could come up with various plausible stories by selectively emphasizing and interpreting this or that, even enumerating everything. Nonetheless, none of it would resolve the following question: how come they make a gathering? How was it possible for them to constitute a ‘gathering’ called an exhibition ‘immanently’? That is, if not this exhibition was nothing but a retrospective in negative sense, where an artist’s past works are merely assembled in one place. By arranging otherwise heterogeneous elements and defining their relationships anew in more tightly-woven textures, this essay seeks to clarify Han’s artistic worldview as well as the contemporary implications of its logic of sensations as evinced in this exhibition.


    1. A Collector Gathering Gatherings


    Not that there is no easy way to approach it. In fact, the exhibition was discernible in terms of each floor. Under the rubric of ‘Passersby’ various paintings in lively colors unfolded inside the first floor, in sizes ranging from slightly bigger than our palm to 2 meters high. In contradistinction to the 1st floor where each frame/canvas contained only one face, the ‘Gathering’ series of the second floor showcased multiple faces in flesh with more spirited hues. Not surprisingly, it is quite tempting to summarize everything in terms of an opposition between ‘1st floor= individual vs. 2nd floor= crowds’ or even a transition from one to the other. After watching the third floor full of black and white croquis and sketches, this type of understanding becomes more pronounced. But is this really the case?


    Let’s begin from <The Gathering, a Man with a Bottle>(2021). Being the poster image of this exhibition, this painting is the first one to catch our eyes upon arriving on the second floor via elevator after surveying works on the 1st floor. Just as the three paintings (‘Schauen,’ ‘Flesh Off,’ ‘Difference and Repetition’) inside the 1st floor, overwhelming viewers with their massive size, arguably represent the ‘Passersby’ series, <The Gathering, a Man with a Bottle > can be said to stand for the ‘Gathering’ series as well as this exhibition itself. As the subtitle suggests, a Man with a Bottle stands in the middle of the canvas, while two male figures look at him from the left background. That is, all of them seem to gather in accordance with the title. This is not true, however. For the artist ‘cut and pasted’ these figures from different photographs and movies. This manner- which he compared to ‘montage’ in cinematic sense in an interview he had with an Italian media after opening1)-is applicable not only among figures but also to an individual figure. The above-mentioned ‘man with a bottle’ himself is born of montage. In this sense, we cannot say they form a gathering, nor can we conclude that they are not gathered. If this work represents this exhibition, what is the implication of this antinomy?


    At this point, we must not lose sight of the fact that half of the title of this exhibition is ‘gathering.’2) That is, <The Gathering, Man with a Bottle> is a work of ‘gathering’ figures and entities, all of which result from ‘gathering’ on their own. It is instructive to recall how ‘Sammlung’ in German signifies not only ‘collection’ as an ‘act of gathering,’ but also a ‘gathering’ or a ‘collection’ as a result, say, in an art museum. In this overdetermined sense, Han is a ‘collector’ or a Sammler. What we need to take into consideration, howerver, is not so many layers or layering effect of this ‘gathering’ as ‘dispersion’ or ‘scatter’ as one of the fundamental conditions of possibility, calling for the very ‘gathering’ before any ‘gathering.’ In fact, according to Walter Benjmain, “[r]ight from the start (ursprünglich), the great collector is struck by the confusion (der Verworrenheit), by the scatter (der Zerstreutheit), in which the things of the world are found.”3) In other words, collecting or ‘gathering’ in its primordial sense presupposes a peculiar sense or experience of “confusion” and “scatter.” As one of those perceptional features inherent to collectors, Benjamin singles out the sense that “his collections [are] in constant flux (ständigem Fluten).” Coextensive with another manner of perception wherein “there would be nothing ”subsistent“(»Bestehendes«) for us...everything would strike us (alles stieße uns zu),” “this is the way thigns are for the great collector. They strike him.”4)


    Perhaps one could pinpoint Haiti as the potential source where Han got the sense that “there would be nothing ”subsistent“(»Bestehendes«) for us...everything would strike us.” But not necessarily. As the artist’s evocation of Godard’s and Farocki’s ‘montage’ amply suggests, Han’s sense of gathering or collection is equally coextensive with other contemporary conditions. Recall, for instance, Claire Bishop’s observation in which she juxtaposed Carol Bove’s <La traversée difficile (The difficult crossing)>(2008), which at first glance appears to be a messy and utterly chaotic collection with arbitrary results of digital search engines5), or David Joselit’s description of what he calls “aggregator” à la ‘post-digital age,’ which “furnish[es] a platform where unlike things may occupy a common space,” and yet, due to its “disarming quality,” “seems always in danger of falling apart.”6)


    Nonetheless, would it be right to consider the ‘Passersby’ series, which Han dubbed as “faces without faces” as part and parcel of contemporary paintings under the so-called ‘post-digital conditions’? Let’s recall what Marion Zilio calls “Facebook nation of the world” in her intriguing book Faceworld, subtitled ‘Face in the 21st century.’ According to Zilio, as “the portrait slides down to the face ([l]e glissement du portrait au visage),” it becomes a “non-face (non-visage).” As a matter of coincidence, she calls this “pure exteriority without interority ([p]ure extériorité sans intériorité)” “faces without face (visages sans visage).”7) On the other hand, Han’s distinctive command of brushstrokes, thick matière, and lively contrasting colors often lends itself to morphological comparison with German Neo-Expressionism à la George Baselitz. To be sure, this genealogy arguably reached its zenith with Francis Bacon by way of Abstract Expressionism (e.g. Wilem de Kooning), before reconnecting with another postwar tradition of Western painting toward ‘undoing face,’ as updated by Adrian Ghenie’s ‘Pie Studies’ series. Last but not least, Han’s works do not have essential things in common with Kim Byungkwan, Wonmi Seo, and Kyungjin Park, and Soonnam Lim, a group of talented Korean painters experimenting with their own twists within this international magnetic field.8) Where is Han located then? It is helpful to remind ourselves that summoning a traumatic experience, a global genealogy, or contemporary media conditions as the cause or contexts of artistic works at stake, remains thoroughly vulnerable to a risk of simplification where a relationship between an artwork and its external conditional is readily explained away in terms of one-way communication of the so-called ‘influence.’


    At this precise juncture, an otherwise banal fact merits our attention, i.e, that, after coming back from Haiti, Han flew off to Ireland where nobody knew him; that he stayed there for one year while drawing croquis of passersby every day. Though habitually mentioned, this interlude is too often relegated as a nondescript episode of his formative period. Granted that staying abroad for a long period of time is not something new, let alone rare. Just imagine a Japanese novelist busy finishing up his upcoming novel while stuck in Iceland; a Brazilian student pursuing his degree in France; or an Australian scholar spending his sabbatical year in Slovenia. One could also add practices of ‘participant-observation,’ anthropologists’ well-known rites of passage whereby they study culture or conventions of a community in far-flung areas. What Han did in Ireland is distinct from all of these. Having left his home, he chose to stay where he had no connection whatsoever. And yet, without paying attention to its local history and customs, he merely drew faces that no one could recognize. This is an act of plunging oneself into a stream of unfamiliar, hardly recognizable faces. Or, better yet, this is akin to a rigorous attempt at self-control, as a way to let faces- otherwise prone to become familiar- flow, and thereby put himself back into that “constant flux.” In this sense, it was less a ‘wandering of a bohemian, free soul’ than a kind of ‘self-restraint.’ Through this temperance, he moved away from the habit of conscious recognition of faces as well as the sense of conventional ‘representation.’ Han’s own description of the period in question below, albeit rather long, is worth quoting in its entirety.  


I went out to the most crowded street every day as if to resist any sense of loneliness. I began staring at the passing faces like a habit, [and] gathering them by drawing them. Painting felt like too much interference of consciousness, so I decided well in advance to draw with little self-consciousness, as if I wrote my signature. Through croquis, I naturally moved away from representation. I transferred collected facial drawings to paintings. Faces have already lost their characteristic- being the front part of the head with eyes, nose, and mouth.9)


    In this short passage from his notes, remarkable for his fine, exquisite distinction among various concepts and terms, he writes that he began “staring at the passing faces, [and] gathering them by drawing them.” Adding elsewhere that “documenting faces incessantly appearing and disappearing in the street is to conserve and take hold of something that departs as well as to replace [it] with painted existence,” he also mentions “faces he collected like an anthropologist studying specimen.” What is fascinating is the implication of the fact that the end product of this ‘gathering’ or ‘collecting’ through ‘self-restraint’ turned out to be ‘bundles of colors.’ The upshot of his “exploration into this face to see what is left after identities crumble and get deconstructed“ was not, say, anatomical frames or unchanging essence of humanity, much less different skin colors. Nor was it terror-stricken images reminiscent of the Haiti earthquake victims, far too routinely invoked with reference to Han’s paintings. What manifested before the eyes of the artist who “looked at human-beings wherein human-beings perished as well as faces wherein faces got wiped out,” even while “evoking dead bodies of group burial in Haiti,” was none other than vibrant bundles of colors, coated with thick textures. How can we make of this?


    2. Survival of a Blind Witness to the Unwatchable


    Walter Benjamin’s truncated yet suggestive fragment, entitled, ‘On Phantasy,’ (1921)-  translated neither in English nor in Korean yet- is quite instrumental in recalibrating our sense of direction at this point. Noting how “in autumn, the connection between emerging and changing coloration with downfall [Untergang] is laid bare,” he takes the blue light or phosphorescence of rotting corpses as an example.10) According to Benjamin, “the deeper coloration [Die tiefere Färbung] accompanies “truly earthly downfall [den eigentlich irdischen Untergang].” To be sure, corpses’ decomposition process includes not only coloration but also deformation. This is why he adds that “Becoming [Werden] is expressed in con-figuration [Gestalt-ung]...while ”passing [Vergehen] in coloration.” By contrast, decoloration concerns what is “not earthly [nicht irdische], that is to say, non-eternal [nicht ewige] downfall” and Benjamin offers humans and Nature “turning pale [Erbleichen]” as examples.11) This astute observation offers a hint at how the counterintuitive opposition between the aftermath of disaster Han saw in person in Haiti, or phenomena of downfall or destruction and ‘vibrant colors’- including gray, as will be explicated below- of his paintings could operate in his oeuvre (albeit with temporal gaps).

    Beyond the idiosyncratic irony (that vibrant colors unfold thanks to the occasion of an utter downfall called death), this fragment also helps us better grasp the leitmotif of ‘Bystander,’ which is the subtitle of this exhibition. Toward the end of the same writing, Benjamin writes: “He turns red- he wants to disappear/pass away [Er wird rot- er möchte vergehen].” The word ‘Vergehen’ at the end of this sentence, is the same verb as the one we saw in another sentence (“Becoming [Werden] is expressed in con-figuration [Gestalt-ung]...while ”passing [Vergehen] in coloration.” While the former sentence mainly concerns an irreversible state of affairs such as ‘death,’ what is at stake in the latter is an affect of shame. As we often say or hear phrases like ‘I am dying shame,’ shame is often bound up with death. Conversely, however, the fact that this idiom is part of our everyday communication means how hard it is for shame to end in real death.

    What is shame by the way? Fourteen years after Benjamin penned the fragment, Jewish philosopher Emmanuel Lévinas, in his early essay, entitled, ‘De l‘evasion,‘ answered this question in his own way. Keeping his distance from conventional emphasis on moral order or spiritual dimension, an otherwise proper approach to ‘philosophical reflections on shame,‘ Lévinas underscored how “shame is primarily connected to our body.”12) As he immediately adds, their relationship, far from detachable, is rather marked by radical inseparability. The entanglement between shame and body has something do to with the situation where one can hardly hide nor delete her or his ashamed body. (In this sense, Lévinas‘s evocation of ‘nudity‘ is in no way incompatible with being fully dressed) Unlike a lizard, a human being in dire straits cannot escape by having its tail cut off. Being riveted to oneself (être rivé à soi-même)” or to one‘s body, and as such unable to escape- this is the state of shame.13)

    In his commentary on this essay, Giorgio Agamben recasts shame in terms of a “double movement, which is both subjectification and desubjectifcation.” As well-known Korean or English idioms (‘I’m so ashamed. I want to hide’, ‘I’m utterly embarrassed and ready to sink through the floor’) often illustrate, shame leads the subject to desire some sort of self-annihilation. As this yearning for erasure seldom gets realized, the subject becomes separated as a witness to his own being in ruins as a pile of rubble. This is the reason why “[i]n shame, the subject thus has no other content than its own desubjectification; it becomes witness to its own disorder: its own oblivion as a subject.”14) 

In this sense, Han’s own recollection of his experience in Haiti below gains resonance.  

Being lucky, I was largely far from disasters. I managed to keep a distance. I was privileged to hear stories on and off and see them from a farther distance on screen. Then one day I fell off from the surface of the disaster and lingered for a while. I could feel its temperature and smell it. As a bystander, spectator, and tourist, I was able to walk around.15)

    One must not, however, mistake the artist’s confession for ‘responsibility for victims’ or the ‘survivor guilt’ after disasters. Rather, what Han lays bare here is closer to what Deleuze and Guattari- invoking Primo Levi, arguably one of the most renowned concentration camp survivors- called ‘shame of being a man [la honte d'ètre un homme],”16) that is, “before the victims (devant les victimes).”17) By virtue of this peculiar affect, something happens. In a sense that the ‘desubjectfied subject’ as the one plucked out of his safe and stable status becomes his/her own “witness,” a complete annihilation of the subject remains unfulfilled- and something remains or survives. What survives the disappearance of the Others, or the subject’s subsequent (desire of) disappearance on account of his or her shame of (mere) watching traces of the former, or despite the sheer shame itself. This is perhaps what Maurice Blanchot wrote in L'Écriture du désastre, his relentless investigation into disaster in its cosmic and most fundamental sense and its immanent link to writing in general, which often becomes indistinguishable from disaster itself as follows:

[Writing] is to be in relation, through Words in their absence, with what one cannot remember—a witness to the unencountered, answerable not only for the void in the subject, but for the subject as a void, its dis- appearance in the imminence of a death which has already taken place, out of place, any place at all.18)

    Or, better still, much more precisely: “The disaster ruins everything, all the while leaving everything intact. [Le désastre ruine tout en laissant tout en l'état].”19) Perhaps this is the true face (without face) of what lies at the heart of ‘Bystanders’ series (before ‘Gathering’ series), which filled up the entire 1st floor, i.e., the strange state of affairs where “there is still a face on the face without a face”:  


Features such as race, age, gender, and disability have disappeared. Like the portrait of Yoon Doo-seo20), there is still a face on the face without a face drawn up to the neck. There is emotion without expression, and there is a space where you can project yourself into- the place from which an Other's face is vacated.21)


    As various commentators have constantly reminded us, shame too often survives death even after annihilation- not unlike the ending (without ending) of Kafka’s Trial in which it seemed, even after K’s death, “as if the shame was meant to outlive him [es war, als sollte die Scham ihn überleben].”22) To be sure, what caused faces in Han’s paintings (mal)function could be not so much the disaster called an earthquake per se as the nameless people he witnessed, or the pigs shamelessly copulating on the ground as the graveyard.23) In this sense, “faces without faces”- which he described as “a space where you can project yourself into- the place from which an Other's face is vacated”- is less an object easy to empathize or imagine with; rather, it bears resemblance to a place where victims who lost their eyes to look back at us and the world indiscernibly overlap with gazes of spectators and the artist- no longer a ‘bystander’ but- as a ‘blind witness.’ This entanglement of subjects and objects, or victims and bystanders resonates with what Alenka Zupančič, quoting Tomo Stanič, indicated, i.e., “the unwatchable” is not so much ‘morally’ obscene or physically invisible as “something that ought not (do so) melts into visibility.”24)


    3. Kaleidoscopes of ‘Lumen Opaticum’


    Thus far, we have explored how, in the wake of an earthquake whose aftermath he personally witnessed in Haiti, Han came to get at “faces without face,” especially on account of ‘shame.’ By voluntarily binding himself to the “constant flux (ständigem Fluten)” of passersby in Ireland, while drawing croquis rather than ‘faithful representations’, the artist (strove to) repeat(ed) his experience of witnessing this process of ‘destruction’ wherein the subject is left behind as the ‘witness’ to its own incomplete annihilation.

    What still remains to be elucidated, however, is the status of the vibrant bundles of colors he thereby came down to. By way of mulling over Benjamin’s brief yet rich ruminations, we tried to broach potential shores of their relationships. Condensing our ocular experience of this exhibition, which overwhelmed us upon entering the first floor of the exhibition gallery, or, through the transparent windows, even from the outside, into the keywords of ‘death’ and ‘disaster’- wouldn’t it be another act of oblivion, if not deception? Disasters and vibrant colors? A colorful disaster? How can we reconcile this seemingly incompatible opposition and contradiction? In order to answer this question, we must face Goethe’s Theory of Colors, a book that the artist read more than multiple times over the past couple of years. This is to pinpoint and comprehend how concretely peculiar features of this singular book- which Goethe published after he turned 60- operated in this exhibition, and their implications.

   As is well-known, Goethe’s conception of colors unfolds in three layers. Firstly, ‘physiological colors’ are coextensive with human body; secondly, ‘physical colors’; and lastly, ‘chemical colors,’ arguably the most objective one. While chemical colors comprise six colors (yellow, blue, red, orange, green, and purple), the most important ones are yellow and blue. They are the very colors of pants and jacket worn by Werther- the famous protagonist of The Sorrows of Young Werther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1774), a best-selling novel Goethe published when he was only twenty three- until he died at the end of the novel. According to Germany’s poet laureate, yellow comes from light, blue darkness. Once we add green, red, orange and purple, we get his six primary colors. Worth noting here is that for him, ‘darkness’ is not the absence of ‘light.’ He did not consider ‘light’ and ‘darkness’ in terms of hierarchy nor did he cast them as ‘Good vs. Evil.’ To reiterate, Goethe does not talk about black and white, or black shadows, much less lack thereof; rather, he discusses colors in general with reference to yellow and blue as the bipolar framework. Goethe’s striking notion of colors arguably peaks at his idea that “Colour itself is a degree of darkness [Die Farbe selbst ist ein Schattiges (skieron).” This formulation, I argue, is the fundamental axiom around which Han’s vibrant colors, unmoored as they were by a disaster, are reorganized.25)

    Let’s recall three massive paintings engulfing us as we entered the first floor of the gallery. As part of expanded versions of the ‘Passersby’ series, they are entitled, <Schauen>, <Flesh Off>, and <Difference and Repetition> respectively. Despite some minor differences, these three works, when compared to other works on the 1st floor, are distinguished by their recognizable eyes and lips. With the exception of virtually black and white ‘Flesh off,’ the rest two paintings are notable for their use of lively colors and tactile matière.

    Bundles of colors, ‘gathered’ or ‘collected’ in <Schauen> (meaning ‘look’ or ‘looking’ in German) in the image of a face, begin to show gray hues as the flesh as skin is taken off in  <Flesh Off>. To be sure, these radiant palettes are restored in  <Difference and Repetition. To be more specific, dynamic balance maintained among three primary colors (red, yellow, blue) in  <Schauen> dissipates as yellow and blue, except for red, are minimized in  <Difference and Repetition>. Should we be simply happy about the return of vibrant sense of colors then? What we can say for sure for now is that these vivid differences will be given much more structural modifications in the ‘Gathering’ series on the 2nd floor.

    Take <The Gathering, The Red Sofa >(2020). Hung on the adjacent wall right next to <The Gathering, a Man with a Bottle> (on its left side, from the viewers’ perspective), which welcomed viewers tossed out of the elevator from the 1st floor, this work was standing back to back with <The Gathering, Blue Shadow>. Is there anything particularly notable here? Yes indeed. But I am not talking about the artist’s or curator’s ‘intention.’ In order to elaborate on this otherwise insignificant point and its implications, one must point to the fact that <The Gathering, The Red Sofa> is founded on an ‘opposition’ or, more precisely, a logic of ‘inversion’ or ‘reversal.’ At first glance, there is only one man standing at the center of this vertical canvas. On closer inspection, however, we can discover one more man. Standing next to the man in the middle, someone is standing on his head. Originally, I myself failed to see this man. One could approach this as a problem of (visual) unconsciousness. Still, it could equally amount to the problem of colors, i.e., that of ‘complementary colors.’ What about  <The Gathering, Blue Shadow>? Hung at the back wall in the left room on the 2nd floor, this painting stood back to back with <The Gathering, The Red Sofa>. Standing right across <The Gathering, Blue Shadow>is <The Gathering, Pilgrims>. In a word, these three paintings are standing in a row, once we do away with a wall between <The Gathering, The Red Sofa> and <The Gathering, Blue Shadow>.

    When it comes to the subject matter, <The Gathering, Pilgrims> has almost nothing in common with  <The Gathering, Blue Shadow>. Putting the title of ‘Pilgrims’, tinged with Christian overtones, in bracket, let us calmly describe what is visible. Originally from Andrei Tarkovsky’s film  <Andrei Reblev>(1966), the image of this painting seems to portray three people passing by from left to right against the backdrop of a field in autumn, presumably after harvest. On top of that, we could add load of hay in the background. In contrast to the image of pilgrims moving past the autumn field after harvest, composition of  <The Gathering, Blue Shadow>is rather modest. In the middle of the canvas, split in half in Y shape, a female-looking figure (with a mask-like face) is standing, along with a man on the right side. Set against the dark blue backdrop in accordance with the title of ‘blue shadow,’ dominant color of these two figures is yellow. On closer examination, they too have blue colors. (The lady is wearing a dark blue skirt while the man is putting on a pair of bright blue shoes)

    Then what do these two have in common? It is colors. To draw a conclusion in advance- albeit only in part-, these two paintings constitute the two major poles of the entire ‘Gathering’ series, by virtue of rendering yellow and blue, the two polar opposites in Goethean color theory, most explicit in the second floor.

    To assure you, color impressions of both paintings do not overlap. In contrast to <The Gathering, Pilgrims> where yellow dominates, blue in <The Gathering, Blue Shadow>clearly sticks out. As we noted above, however, yellow no less stands out on account of the color of clothes both figures wear. In fact, beyond their outfits, yellow- as if exposed to some sunlight beaming down in diagonal direction at noon- is in command of the front portion of the canvas. As a result, the contrast between the ’blue shadow’ in the background and yellow in the foreground is thrown into sharp relief, without lacking any shadows. This type of contrast is nowhere to be found in <The Gathering, Pilgrims>. While the skirt worn by the (non-binary?) far-right figure is the most bluish, it pales in comparison to the lady’s dark blue skirt in <The Gathering, Blue Shadow>due to its composite nature with red, green and yellow. Though based in yellow, the center figure in the middle, if slightly to the left, does not offer bright impressions either as its color scheme constitutes a pyramid from bottom to top, with orange and blue colors. The far left figure, as if entering the frame right now, takes yellow as its foundation too. And yet, it is added green and orange that prevails.

    During a conversation with the artist in the gallery, I repeatedly noted how, despite the ubiquity of yellow in <The Gathering, Pilgrims>, this work did not appear to me ‘bright’ at all and as such seemed special. Now I am more than convinced that such a strange impression is immanently correlated with the aforementioned ‘polarity of light and darkness/yellow and blue. Not unlike <The Gathering, Blue Shadow>where yellow got the upper hand over against the foregrounded blue, <The Gathering, Pilgrims>, as a painting paralleling complimentary colors, gravitates toward blue, or darkness rather than yellow or brightness. This is precisely the following remark by Goethe points to: “Chiaroscuro exhibits the substance as substance, inasmuch as light and shade inform us as to degrees of density.”26) Beyond mere ’symbols,’ Goethe insisted that yellow and blue came from light and darkness in reality, and as such they delimit the entire world of visibility as he defined it.

    This point brings <The Gathering, The Red Sofa> back again. I wrote how this work stood “back to back” with <The Gathering, Blue Shadow>, sharing a wall between them. At the same time, I noted that the number of figures in the middle of <The Gathering, The Red Sofa> is not one but two and, more crucially, they are vertically “inverted” to each other. If we add the connection between <The Gathering, Pilgrims> and <The Gathering, Blue Shadow>, based on the polar relationship between yellow and blue to this, a much clearer picture emerges. The picture is related to the fact that they forge a relationship in terms of a series of ‘polarities’ and ‘reversal.’ The inverted mirror image of two men or one man in <The Gathering, The Red Sofa> stands “back to back” with <The Gathering, Blue Shadow>, a work in which the polarity between yellow and blue was most vividly embodied in the entire 2nd floor. Looking directly at  <The Gathering, Blue Shadow>,  <The Gathering, Pilgrims> constitutes the ‘polarity’ of the 2nd floor. Simultaneously, however, this work exhibits middle colors between yellow and blue, which is what it shares with <The Gathering, Blue Shadow>, and thereby prevents the dominant yellow from offering ‘bright’ impressions.

    <The Gathering, The Procession>(2018) is a paradoxical case in point as it buttresses this reading. Placed as the first painting on the right wall, from the perspective of viewers standing in the middle of the left room on the 2nd floor, having <The Gathering, Pilgrims> before them, this work is the only black and white or grayscale painting on the 2nd floor. What does this have to do with our exposition? We must be reminded of Goethe’s no less peculiar conception of gray so as to answer it. According to Goethe, “grey, which, like apparent color, always appears somewhat darker than white, and somewhat lighter than black”27) As Francis Guerin aptly adds in her stimulating book on the exceptional position of gray and its implication in the modern history of painting, Goethe defined gray in terms of a combination of light and darkness.28) This stance is also connected to Goethe’s another core formula, i.e., “Colour itself is a degree of darkness [Die Farbe selbst ist ein Schattiges (skieron).” To be sure, this formulation resulted from Goethe’s fine-tuning of Kircher’s ingenious expression “lumen opaticum,” meaning ‘dark light.’29) Dismissing an age-old argument that ‘colors, when mixed together, become white’ as “an absurdity,” he declares that “[c]olors when mixed together retain their original darkness.”30) <The Gathering, The Procession>, a blackish painting, appears to be in diametric opposition to  <The Gathering, Pilgrims> or <The Gathering, Blue Shadow>, paintings with different emphases on yellow and blue. In this fundamental sense, however, they are on the same plane of immanence. And this relationship perfectly resonates with the internal interconnection between the three main paintings of the ‘Passersby’ series, i.e., <Schauen>, <Flesh Off>, and <Difference and Repetition>.

    What does this resonance mean? Or more fundamentally, what kind of implications does immanent resonance, which our painstaking analysis of Han Jae-yeol's overall work engenders with Goethe’s Theory of Colours, have? In his profound fragments on colors, born of his early reflections on Goethe’s Theory of Colours, Benjamin affirms that “all painting is inevitably and correlatively fantasy [Phantasie] and at the same time a fascimile [Abbild],”31) before stating that "[t]he light of Ideas fights the darkness of the creative ground, and in this fight, it produces the fantasy’s play of colors.” To which he hastens to add: “Fantasy’s phenomena may be described as dis-figuration of configuration [Entstaltung des Gestalteten]” and “that it plays a dissolving game of configurations” is “inherent to all fantasy.”32)

    By “dis-figuring” conventional forms of “face” to their limits, they drive the traditional foundation of “portrait” into creative darkness, allowing us to read Han’s work which “produces the fantasy’s play of colors” much clearly- say, in the post-Baconian genealogy. Crucial here is that this fantastic disfiguration is distinct from the “destructive collapse of the empirical [zerstörerischen Verfall der Empirie].”33) We must not miss this point. As emphasized earlier, it distinguishes our work from lazy readings, which persistently try to reduce Han’s oeuvre to the epicenter of the disaster called Haiti.

    At the same time, however, these differences must be appreciated by way of more fundamental implications of Goethe's theory of color. For Goethe's reflection on the world, redefined in terms of “colour itself [as] a degree of darkness” makes the conventional color compositions and worldview- based on the binary opposition of “darkness and brightness”- do the headstand. In this rigorous sense, Han’s works are ‘painting of the diaster’- not in the sense of a “painting that portrays disasters” but in the sense that the conventional foundation of painting itself is “in disaster.” Still, this does not contradict the vibrance of vivid colors his paintings embody. This is because such colors are new consequences born of the “fight” in which “the light of Ideas fights the darkness of the creative foundation,” that is, the “fantasy’s play of colors.”


    4. From Faces without Faces to Masks


    Without necessarily ‘reducing’ other works I haven’t commented on due to time and space limitations to those I already elaborated on, this reading opens up an alternative route to access them as part of variations in a larger sense. At stake is the issue of ‘crowds’ or ‘multiplicity.’ To be brief, I contend that there is no substantial difference between works such as <The Gathering, a Man>(2021) where only one figure appears and ones like <The Gathering, Ritual>(2021) in which presumably a couple of hundred figures are mobilized, as long as they partake of Han’s oeuvre. The same holds for paintings such as <The Gathering, JGP>(2018), <The Gathering, a Family>(2021), or <The Gathering, a Peak>(2020) where numerous figures between one and many show up. Again, I am not saying difference in numbers hardly matters.

    The point I am trying to get across now, to be sure, was already implicit in the paradox I alluded to earlier regarding <The Gathering, a Man with a Bottle>(2021). Namely, in a fundamental sense that figures in the picture as well as the ‘man with a bottle’ equally result from montage, it is wrong not only to declare that figures in this picture constitute a gathering but no less so to conclude that they fall short of a gathering; a conundrum where ‘one’ is not necessarily in the singular or without a gathering, or, inversely, where ‘many’ are not in the plural nor amount to a gathering. This irony precisely resonates with what Han noted in his ‘participant-observation’ of the nation-wide demonstrations in 2016, calling for impeachment of the then President Park Geun-hye.  


When people gathered, people got wiped out. The gathered crowd spoke as a certain voice. Its voice turned into an image again. Two, five, ten, hundred, and million- all had different shapes, smells, sounds, and touches.

    Still worth adding is the fact that the artist approaches this indistinguishability of the singular from the plural from the perspective of Goethean theory of colors, i..e, wherein colors are distributed in terms of physiology, physics or, if you will, chemistry. Along with his experience of the unprecedented historic event, the probing subtlety of such overdetermined distinctions attests to the need to stop expounding on Han‘s oeuvre by reducing them back to his traumatic experience in Haiti in 2010. 

    I am not saying that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the ‘Passersby’ series and the ‘Gathering’ series. Rather, the crucial difference worth highlighting can be summarized in terms of a transition ‘from “faces without faces” to masks.” This peculiar feature of the ’face as a mask’ is rendered visible most explicitly in the central figure of <The Gathering, a Man with a Bottle> and in the lady of<The Gathering, Blue Shadow>. Still, one could safely submit that the entire <Gathering> series is traversed by this distinctive facet. Echoing with an observation by Hans Belting in his recent book, which Han avidly perused,34) this distinction serves to constitute Han’s own update to the renowned German art historian’s ruminations, while corresponding to the indistinguishability of ’an individual from a crowd,’ or ‘the singular from the plural.’ Not only does it resonate with Jacques Aumont’s diagnosis (“Face is no longer the window of the soul but a poster, a slogan, a tag, or a badge”)35), but it is also coextensive with the fact that the majority of face images in Lim Soon-nam’s ‘A Certain Face’ series, is based on a series of ‘selfies’ circulating online.36)

    Still, despite these commonalities, Han’s oeuvre firmly secures its own territory thanks to the peculiar features we have explored. It constitutes a genuine response to the question of how to emulate or overhaul the historical genealogy of painting- a trajectory paradoxically and characteristically redefined through crises, in which the traditional order of representation is still idling both in terms of configuration and color. Further, it sends us helplessly back to the quandary of how to change Humanity’s history whose course toward what Hegel called “evil infinity (schlechte Unendlichkeit)” never ceases to overcome its own limitations with more terrifying disasters. Hence our unabated expectations towards his future works, which rearrange the painting in disaster in vivid colors- after disaster.





1) Han evokes Jean-Luc Godard, Sergei Eisenstein, and Harun Farocki. “I place images side by side the way directors like Goddard, Eisenstein, and Harun Farocki would, as a montage.” ‘In Conversation with Han Jaeyeol: On Art Born from Disasters, the Psychology of Face-less Portraits, and the Importance of Color,’ Art Nomade Milan 2021.11.19. https://artnomademilan.it/han-jaeyeol/?lang=en
2) I will discuss ‘Bystanders’, the other half of the title later in the essay.  
3)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V, hrsg. Rolf Tiedemann und Hermann Schweppenhauser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72), 279 (H4a,1); Walter Benjmain, The Arcades Project, p. 211.
4) Ibid, p.272; The Arcades Project, p. 205.
5) Claire Bishop, ‘Digital Divide: Contemporary Art and New Media.’ Artforum Vol. 51, No.1 (Sep.2012)
https://www.artforum.com/print/201207/digital-divide-contemporary-art-and-new-media-31944
6) David Joselit, in Hal Foster, Rosalind Krauss, Yve-Alain Bois, Benjamin H. D. Buchloh, and David Joselit, Art Since 1900: Modernism, Antimodernism, Postmodernism, 3rd ed. New York: Thames and Hudson, 2016, pp. 57-58. Reducing various ways in which ‘montage and ‘archive’ collect and operate its constitutent elements to something extremely ‘homogeneous,’ Joselit endeavors to differentiate them from his idea of ‘aggregator.’ Considering heterogeneity of montage Godard, and particularly Farocki fine-tuned in his works, however, his account hardly counts as persuasive. For a reading that contrasts Godard and Farocki, see the following. Georges Didi-Huberman, Remontages du temps subi: L'Oeil de l'histoire 2, Paris: Editions de Minuit, 2010. Esp. pp. 173-180.
7) Marion Zilio, Faceworld: Le visage au XXI siècle, Paris: PUF, 2018, p. 10.
8) To be sure, one must be reminded of Deleuze’s subtle yet decisive distinction: “As a portraitist. Bacon is a painter of heads, not faces (Portraitiste, Bacon est peintre de tétes et non de visages)” Gilles Deleuze, Francis Bacon: logique de la sensation. Paris: Seuil, 1981/2002, p. 27; Gilles Deleuze, Francis Bacon: The Logic of Sensation, trans. Daniel W. Smith, New York: Continuum, 2003, p. 20. As to the scintillating magnetic field these three come to forge, see the following essays I wrote for Wonmi Seo and Kyungji Park respectively. Yung Bin Kwak, 「(De)Facing  <Facing > 」, 『Facing 』 (Boan Inn 1942, 2017.11.24.-12.3), 2018 exhibition catalogue; Yung Bin Kwak, 「Site of Aesthetic Breakthrough and Inundation: Kyungjin Park,  <Site > Review Essay」, 『Monthly Art』, Jan. 2019.
9) Emphasis is mine.
10) ‘Zur Phantasie’, Gesammelte Schriften, Vol. VI, pp. 121-122. All quotations below come from this fragment.
11) Far from contradicting his account of rotting corpses’ phosphorescence being a “truly earthly downfall,” this observation serves to distinguish what is “truly earthly” from what is “not earthly” among humans and in Nature.
12) “[L]a honte se rapporte en premier lieu à notre corps.” Emmanuel Levinas, De l'évasion, Montpellier: Fata Morgana, 1982, p.112; Emmanuel Levinas, On Escape, trans. Bettina Bergo,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3, p. 64.
13) De l'évasion, p.113. On Escape, p. 64.
14) Giorgio Agamben, The Remnants of Auschwitz: The Witness and the Archive, trans. Daniel Heller-Roazen, New York: Zone Books, 1999, p. 106. Toward the latter half of this sentence in Korean translation, to be sure, one reads “it becomes witness to its own perfect disorder” in Korean. This reference to “perfect” is nowhere to be found in the original Italian, not to mention in French or English translations. This is obvious since, as Levinas consistently reminds us, annhiliation of subject(ivity) is impossible. “Nella vergogna, il soggetto non ha, cioè, altro contenuto che la propria desoggettivazione, diventa testimone del proprio dissesto, del proprio perdersi come soggetto. Questo doppio movimento, insieme di soggettivazione e di desoggettivazione, è la vergogna.” Giorgio Agamben, Quel che resta di Auschwitz: L'archivio e il testimone, Torino: Bollati Boringhieri, 1998, p. 126; “Dans la honte, le sujet a donc pour seul contenu sa propre désubjectivation: témoin de sa propre débâcle, de sa propre perte comme sujet. Ce double mouvement – de subjectivation et désubjectivation en même temps –, telle est la honte...” Giorgio Agamben, Ce qui reste d’Auschwitz. L’archive et le témoin, [Homo sacer III]. Paris, Seuil., p.114.
15) Jaeyeol Han, ‘Working Notes,’ 2021, p.2.
16) Gilles Deleuze et Felix Guattari, Qu’est-ce que la philosophie? Paris, Éditions de Minuit, 1991, p.103. Gilles Deleuze and Felix Guattari, What is Philosophy? trans. Hugh Tomlinso and Graham Burchell,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p.108.
17) Ibid., p.102. What is Philosophy? p.107.
18) “Ecrire, certes, c'est [...] par les mols én leur absence, être en rapport avec ce dont on ne peut !é souvenir, témoin du non-éprouvé, répondant non seulement au vide  dans le sujet, mais au sujet comme vide, sa disparition dans l'imminence d'une mort qui a céj â eu lieu hors de tout lieu.” L'Écriture du désastre, p.186.The Writing of the Disaster, p. 121.
19) Maurice Blanchot, L'Écriture du désastre, Paris: Gallimard, 1980, p.9; Maurice Blanchot, The Writing of the Disaster, trans. Ann Smock, Lincoln: University of Nebraska Press, 1986, p.1.
20) A painter and scholar of the Joseon Dynasty, Yun Du-seo (1668– 1715) is well-known for his self-portrait, which is Korea’s National Treasure No. 240. His bold manner of drawing his own face without the entire body was deemed unconventional and virtually unprecedented during the 17th and 18th centuries.   
21) ‘Working Notes,’ p. 3.
22) Maurice Blanchot, L'Écriture du désastre, p.89. Maurice Blanchot, The Writing of the Disaster, trans. Ann Smock, p.53. Agamben, Remnants of Auschwitz, p. 104.
23) On the first page of his working notes, the artist juxtaposed two images he selected among the vast pool of photographs on the disaster available online. The first one is a pile of more than hundred human corpses, seemingly in the process of mass burial. The second one is a close-up of two pigs, busy copulating on the same land. Nonetheless, it is utterly unclear whether the effect of this juxtaposition results in moral condemnation of pigs ‘unabashedly indulging in carnal pleasures,’ or projection of the artist’s and our shame onto reproductive behaviors of animals, based on amoral impulses. This ambiguity is reminiscent of what Deleuze and Guattari underscored, with Kafka’s stories about animals in mind, that “there is no way to escape the ignoble but to play the part of the animal,” or “thought itself is sometimes closer to an animal that dies than to a living, even democratic, human being.” Gilles Deleuze and Guattari, What is Philosophy?, p.108. “Nous ne sommes pas responsables des victimes, mais devant les victimes. Et il n'y a pas d'autre moyen que de faire l'animal (grogner, fouir, ricaner, se convulser) pour échapper ã l'ignoble: la pensée même est parfois plus proche dion animal qui meurt que d'un homme vivant, même démocrate.” Gilles Deleuze et Felix Guattari, Qu’est-ce que la philosophie?, p. 103.
24) Alenka Zupančič, ‘Melting into Visibility,’ in Unwatchable, eds. by Nicolas Baer, Maggie Hennefeld, Laura Horak, Gunnar Iversen, New Brunswick, Rutgers University Press, 2019, p.49.
25) What is striking is that Goethe’s central tenet of ‘polarity of light and darkness’ seems to resonate with recent findings of scientific experiments in the 21st century. As Olaf L.Müller, an eminent philosopher of science based at the Humboldt University in Berlin, has emphasized in his articles and voluminous book of research, Goethe’s observations are beginning to be corroborated by some, if not all, scientific, empirical measurements. (See for example,  Johannes Grebe-Ellis & Oliver Passon, “Goethe’s Farbenlehre from the Perspective of Modern Physics,“ Dialogue vol. 1 (Sep. 2020), pp. 50-59; Olaf L. Müller, ‘Goethe's Polairty of Light and Darkness,’ Journal for General Philosophy of Science/ Zeitschrift für Allgemeine Wissenschaftstheorie 49(4), 2018, pp. 581-598; Olaf L. Müller, Mehr Licht: Goethe mit Newton im Streit um die Farben, S. Fischer, Frankfurt a.M. 2015) Olaf’s massive book (544 pages), roughly translated as More Light: Goethe Debating with Newton on Colors, takes Goethe’s last words as its title. If Goethe’s argument, having been marginalized as subjective speculations advanced not by a scientist but by an artist, challenges us to think the world we thought we knew anew, one could argue that Han’s paintings do the same with images.
26) Goethe, Theory of Colours, no. 852, p. 331.
27) Theory of Colours, no. 556, p.225.
28) Frances Guerin, The Truth is Always Grey: A History of Modernist Painting,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8, p. 26.
29) “Die Farbe selbst ist ein Schattiges (skieron); deswegen Kircher vollkommen recht hat, sie Lumen opacatum zu nennen.” “Colour itself is a degree of darkness; hence Kircher is perfectly right in calling it lumen opaticum.” Geothe, Theory of Colours, no. 69, p. 31.
30) Theory of Colours, no. 558, 559, p.225.
31) Walter Benjamin, ‘Zur Malerei’, Gesammelte Schriften, Vol. VI, pp. 113.
32) Walter Benjamin, ‘Phantasie’, Gesammelte Schriften, Vol. VI, pp. 114.
33) ibid., p. 115.
34) “When we see the ”real image“ we never see the true face, but always a proxy for it- or, if you will, a mask.” Hans Belting, Face and Mask: A Double History. Thomas S. Hansen and Abby J. Hansen, trans. Princeton and Oxford: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7, 246.
35) Jacques Aumont, Du visage au cinema, Paris: Editions de l’Etoile, 1992, p.186.
36) cf. Yung Bin Kwak, ‘Seesawing Between Anemic and Sanguine Faces: On Lim Soonam s Paintings (2021).







The Gathering, Bystanders
11.11 - 12.16.2021 / Gallery BK



이나라 이미지문화연구자
동의대 영화·트랜스미디어 연구소 전임연구원


    한재열은 작가 생활의 출발점으로 2010년 대지진이 휩쓸고 간 아이티에서의 파병 생활을 꼽곤 한다. 한재열의 그림은 재난의 자리에서 시작된 셈이다. 자연재해와 인재 중에서도 지진은 유별난 재해다. 지진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뿐 아니라 우리가 몸을 기대고 있는 바닥, 존재의 거처를 가르고 무너뜨리는 재난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이들은 무너진 바탕과 다름없는 대지에 다시 집을 지어야 한다. 무너진 바탕에서 시작된 그림은 무엇을 재현할 수 있을까? 아이티 파병에서 돌아온 후 아일랜드로 떠난 한재열은 매일 거리에 나가 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크로키 했다고 한다. 이후 한재열은 십여 년간 『Passersby』 연작을 이어나간다. 네 번의 개인전을 통해 발표될 『Passersby』 연작의 캔버스는 얼핏 보아 재난으로 부서진 형상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그곳에는 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외양의 차이, 즉 눈, 코, 입이나 사회적 기호, 즉 인종, 성별이나 계급을 추측할 수 있는 기호를 제거한 얼굴 아닌 얼굴이 있다. 이 형상은 질료적 원상태를 끊임없이 환기하는 색채 덩어리, 얼굴의 자리, 자국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과 비인간을 가로지르는 이 초상 아닌 초상‘들’은 십여 년 동안 한재열의 캔버스에서 사라지는 대신 계속 계열을 만들며 ‘출현’한 셈이다. 출현한 침묵, 가령 굳게 다문 입이 일종의 외침을 재현하듯, 사라짐의 출현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존재를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한재열의 후속 작업이 『Bystanders』 로 명명한 군상 시리즈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인류의 재난이었던 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인간과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했던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정치적 차원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복수의 인간들을 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단수의 인간이 인간 일반, 인간의 총체성을 떠올리게 하는 용어라면 다수성으로서의 인간들이라는 용어는 조정 가능성(modulable)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문서고에서 역사 속 이름 없는 이들에 대한 기록물을 살펴온 역사학자 아를레트 파르주(Arlette Farge)는 육체적 양상을 기술한 문서를 역사 기록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아닌 인간들, 영혼의 존재가 아닌 육체의 존재들을 통해 정치와 역사의 차원을 복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괴테의 <색채론>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 온 한재열의 작업, 초상들의 얼굴(『Passersby』), 얼굴들의 초상(『Bystanders』)에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가시성의 세계를 조각내는 동시에 뒤섞으면서 한재열의 색채-터치는 일종의 모듈처럼 작동한다.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반복을 위한 모듈이 아니라 확정된 이름과 윤곽의 바깥에서 이질성과 복잡성의 감각적인 지대를 조율하는 색채-이미지의 모듈.

    특히 역사적 재난과 주변인의 기록 이미지를 조각조각 참조하고 변형, 재배열한 연작에 이르면 이질성의 감각적 세계에 깃든 정치성과 역사성이 매섭게 관람객을 응시한다. 나의 검은 그림자가 그렇다. 군중의 형상을 받치고 있는 검은 그림자는 우리에게 먼저 캔버스 속 인물들이 겪고 있는 재난, 겪게 될 재난을 상상하도록 할 것이다. 다음 순간 우리는 우리의 얼굴을 캔버스 속 인물의 얼굴 아닌 얼굴에 포갠다. 우리 앞에서 인물의 재난을 환기하던 검은 그림자는 순간 우리 내면의 그림자가 되고 우리는 인물의 재난을 인류의 재난으로 경험한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얼굴은 우리의 얼굴이 되었다가 마침내 우리를 바라보는 우리 내면의 얼굴이 된다. 한재열의 캔버스에서 이미지의 전율이 출현하는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다.







The Gathering, Bystanders
11.11 - 12.16.2021 / Gallery BK



Nara Lee 
Image Culture Critic and Senior Researcher
at Cinema & Transmedia Institute
Dong-Eui University


    When asked about the starting point of his artist career, Jaeyeol Han refers to his service in Haiti as a part of the military response following the 2010 earthquake. To put it short, his art began at the site of a disaster. Of the numerous natural and man-made disasters, earthquake is peculiar in that not only does it cost human lives, it also splits and pulverizes the ground we stand on, the very shelter of our existences. It turns the earth into a collapsed background, upon which the survivors must build new houses. When a painting practice initiates from such a collapsed background, what exactly could it represent? After being discharged from his military service in Haiti, Han emigrated to Ireland, went out to its streets every day, and sketched the faces of the passersby. The ensuing Passersby series became a part of his practice for more than ten years. At first glance, the series, having been presented at four separate solo exhibitions (including this occasion), seem to be the unfiltered representations of figures torn apart by a disaster. His faces are robbed of features that make a person unique and distinguishable, such as eyes, nose, mouth, and social signs that imply the person’s race, sex, or social class. Blobs of colors constantly reminding viewers of their material origin. It would be possible to call the images “faces without faces,” the site where a face used to be, or the traces of a face. However, these “portraits without portraits” — both human and non-human at the same time — instead of disappearing from Han’s canvases, have kept appearing in his works, constantly creating series in the meanwhile. Just as how one could represent a shout via an image of silence — for instance, that of a closed mouth — the disappearance appearing here imprints viewers with beings that remain and do not disappear. It was no coincidence that his next series, Bystanders, would feature groups of people.

    World War II was such a disaster for mankind that it put forth the question of what humanity is. Among its ashes, Hannah Arendt constantly probed into what the true nature of humans and politics are. To contemplate the realm of politics, she declared that one must first consider the men because the men are what involves modulability; meanwhile, the man is a word that recalls human in general or its overall characteristics. On the other hand, Arlette Farge, a historian who dives into numerous archives to study records made on nameless persons, has asserted that history must actively utilize the documentations made on bodily circumstances. Men without men, or the idea that the realms of politics and history could be revisited via bodily existences instead of the psychological — apply this idea to Han’s oeuvre, the faces in portraits (the Passersby series) and the portraits in faces (theBystanders series) strongly influenced by his love for Goethe’s Theory of Colors. As Han tears the visible world apart and shuffles the pieces simultaneously, his color-marks behave as modules, but not like the ones made for mechanic, automated repetitions. Instead, his ones are color-image modules that regulate the sensory region of disparateness and complexness beyond the boundaries of defined names and contours.

    In particular, when we arrive at the Gathering series where Han takes sources from the image archives of disasters and modifies and rearranges the pieces, the politicalness and historicalness ingrained in the sensual realm of disparateness menacingly glare at the viewers. The black shadows in The Gathering, a Man with a Bottle, and The Gathering, Bystanders are such instances. First, the black shadows in Han’s images, serving as the pedestal to the groups of men, urge us to imagine the disasters the characters are suffering (or will be suffering). And in the next moment, we come to merge our faces with the “faces without faces” in his paintings. The black shadows that reminded us of calamities suddenly become shadows within our psyche, and we experience the character’s disaster as mankind’s disaster. The faces summoned in front of us turn into our faces, and at last, become the face within our psyche that stares us back. And in this exact moment, the thrill of the image conjures itself on Han’s canvases.



Translated by Jaehee Han, https://steppingstones.info





IN CONVERSATION WITH HAN JAEYEOL : ON ART BORN FROM DISASTERS, THE PSYCHOLOGY OF FACE-LESS PORTRAITS, AND THE IMPORTANCE OF COLOR



Valentina Buzzi
Art Nomade Milan




A talk on “The Gathering; Bystanders exhibition at Gallery BK, Seoul


“When I fall into the abyss, I go straight into it,
head down and heels up,
and I’m even pleased that I’m falling,
and for me I find it beautiful.
And so in that very shame I suddenly begin a hymn.”

Fyodor Dostoevsky – The Brothers Karamazov



    On Han Jaeyeol’s work


There’s something I will never get tired of stressing, which is: you fall in love with the art you resonate with. Han Jaeyeol’s art represents another confirmation of my belief in this incredible connection that exists between art and spectator, but even more between art and artist. History of art teaches us repeatedly how art is intrinsic with a process of catharsis, of forgiveness, of liberation, leading almost to an experience that some may call thaumaturgic (from θαυματουργία, which literally in ancient Greek means “working miracles”).

Han Jaeyeol starts his artistic journey in reaction to tragedy: in 2010 he works in the response to the disastrous earthquake in Haiti as part of his military service. From this defining moment of his life, the artist takes an interest not only in people, but also in what is behind and beyond people’s appearance: beyond the face, gender, race, and color, in the quest for an insightful gaze on humanity in its deepest meaning. Liberated from their physical features, the abstract expressionist faces of Han Jaeyeol tell a story of emotions and psychology, with a study on color that derives both from Goethe’s infamous theory and from the artist’s abilities in creating his own pigments. This study on portrait is presented in the full “Passersby” series, whose name alludes to his passion for people-sketching born during this time in Ireland.

The evolution of his research resides then on the second series presented at the gallery, which is The Gatherings, where the portraits assume a body and a contextualisation in the re-interpretation and re-imagination of sites of disasters: the political meets the personal, embodied in large-scale paintings that sparkle through their vibrant choice of color. It’s a powerful, impactful, and intimate dialogue at the same time: whereas the Passersby series invites the viewer to look closer and closer, within their own macrocosms of human’s unique existentiality explored through thick textural brushes, The Gathering series is an élance from the painting to the viewer, violent in claiming its own space and attention through the vibrant pigmentation of his colors.

Han Jaeyeol’ exhibition reminds me of the concept of Nostos (νόστος) of the Odyssey: a constant journey on the search of himself through others, on a consequent cycle of events, people, cities, travels, and inspirations that enrich each stroke of oil painting on the canvas. It’s a capture of the ephemeral and the impermanent, a search for something that is beyond everything that the artist encounters.

I had the pleasure of discussing all of this with the artist himself, through an in-depth conversation at Gallery BK, surrounded by the exhibition. It was a very interesting and enriching journey, and it clearly highlighted how much thoughts and research there is behind the artist’ work, as well as a deep curiosity and sensibility for the world he lives in and for the disciplines that try to make sense of it and – ultimately – us, humans.





    In Conversation with Han Jaeyeol


VB: Reading the curatorial text of your exhibition at Gallery BK, I learn that your art started in a very peculiar part of your life, which is related to your military service in 2010 in Haiti, in response to the disastrous heart quake. I would love to elaborate on that and how you link the discovery of art practice in relation to such an impactful experience. A long time ago, Aristotle taught us that art can be cathartic, modernists also thought us that is not necessarily a pursuit of beauty, yet others show how beauty can emerge from ruins (physical or metaphoric). What is, then, art for you?

JH: When I was in Haiti, it was just after the huge earthquake had taken place. There were only ruins and people left after a crisis I couldn’t have imagined having experienced or foreseen in my own life. All I could do was look in, from the outside. People are often defined by what is apparent and what we see. But, when you close your eyes, it is not what is shown or apparent that defines who we feel that we are. It is not the color of our skin, nor the muscles that we are built from. We are not what we appear to be, nor what we are made of, but what we think and feel that we are. There began my interest in people.

VB: I am particularly fascinated by your textural work on canvas, the layering that emerges from the brushes, this sort of textural expressionism which becomes powerful in the way the materiality of it reaches out to the viewer. I believe that the technique one chooses is an intrinsic part of the story they want to tell. How did you mature your style? How does it relate to the universe of your stories?

JH: For the Passersby series on the ground floor, I collect symbols as an anthropologist would do – focusing on the face, the head, the body… Then, I remove all their social features through which one may become recognizable. For example, ethnicity, gender, and age are all put aside. What I focus on is the material aspect, the collision of formative elements that confront each other to paradoxically emphasize their presence in their antagonistic characteristics – the curves and the straight linear strokes, the wide and the narrow, the dynamic collision between the fast and the slow, the flat and the thick… And in this process, the abstract and expressive texture naturally reveals itself. The drawings I made to prepare for my paintings also had a lot of influence over my style. In addition to that, I started to make my own pigment bars, which deepened my understanding of materials, and this led to an expansive evolution of my overall expressive style.

VB: In your exhibition at Gallery BK you present two series of your paintings, The Gathering and Passersby. I would love to start with exploring what we can see at the first floor of the gallery, which is the Passersby series. Could you tell me how it connects to your experience in Ireland and Europe and to people-sketching? But also, to the concept of “faces without face”, which is so peculiar in your practice and – from my own sensitivity – opens the door to a macro-cosmos of unveiled feelings and human psychology, which we have access thanks to the absence of the face’s physical features (and personas, perhaps)?

JH: There is a word in Spanish, “imago”, which refers to the molted skin of a larva. This word is also the etymology of the word “image”.  During ancient Roman times, imago was the tradition of molding a dead person’s face with wax to reproduce a mask to remember him/her by. Through this procedure, the wax mask hung on the wall of the family of the dead person would represent his/her relationship with the family, thus a symbol of the person to replace his/her existence. The mask would become the face, replacing it, and thus the identity of the dead person. I take inspiration from this in my painting- process.

I don’t have any special or personal ties to Ireland, but my time there was meaningful in what I could experiment as an artist, as I was experimenting to see if I could live as a painter. And so, the Passersby series was born during that time, where I was also distant from family and friends, I was completely alone there, and painting/sketching became my comfort.

Every day, we pass by many unknown people, and we hardly remember any of them properly. But they are each one of them, protagonists at the center of their own lives. I started to document them with my eyes, the countless unknown people passing by. I looked at one person for about 30 seconds and made a quick sketch based on what I had seen. Then, back at the studio, based on what I could remember and what I had sketched, I painted portraits of the people I had seen during the day. In the process, it was interesting for me to see how by not remembering every single detail, I could paradoxically focus on the strong characteristics of the faces and bring out the impression I had taken a glimpse of, beyond the actual apparent features.

VB: The second series that is presented in the Gallery space is The Gathering: in the text it is explained that you take sources from the image archives of disasters, and you modify them, rearranging them. Could you tell us about the reasoning behind the birth of this series?

JH: The second floor shows The Gathering series, which is basically a witness to the age of overflowing images that we live in. It is an attempt to see images, not only as they are, but to see beyond them. To see past what is apparent. As I gradually turned from painting portraits of individuals to depicting people or even groups of people, I started to explore different ways to experiment how I could vary my method of expression within the boundaries of “painterly painting”. One such experiment would be making my own paint and pigments and exploring different types of material. Another would be to assemble and juxtapose random images in the fashion of a “montage” so that the narrative of each image can collide with that of another and create new narratives. As I did for the “Passersby” series, I, as a person living in the 21st century and as a witness to my own historical timeline, drew inspiration from historical footage but tried to conceal as much as possible the exact source of my inspiration. It is through this ambiguity that viewers can take the space they need to imagine their own narratives and let the images converse with one another. I place images side by side the way directors like Goddard, Eisenstein, and Harun Farocki would, as a montage.

VB: I feel like there are a lot of layers that take part into this series: there is, for instance, a political and historical realm, yet there is also the vibrancy and sensuality – almost aggressive in taking their place in the space – of these bright colors. Could you tell us more about the choice of colors and how it relates to what you want to convey through the series?

JH: I was very much influenced by Goethe’s theory of colors. Of course, it is nothing near scientific today and it’s a quite personal and intuitive analysis of colors, but this really helped with my painterly imagination. So, with Goethe in mind, I based my work on the three basic colors, red, yellow and blue, and made variations based on these. At the same time, I was always thinking about the collision of textural elements that paradoxically emphasized their presence on the canvas. My idea of colors is ultimately linked to balancing out the brightness of each color, rather than focusing on the hues.

VB: Is there anything else you would like to add related to the two series presented which we haven’t touched yet?

JH: I worked on the Passersby series for over 10 years, and this exhibition is, in a way, the closing of the series. With the exhibition at Gallery BK, I began my new series, The Gathering. What I found most interesting during this experience was that at one point, each face of the Passersby series started to demand a body, a more global/holistic narrative. It’s interesting how there is such a duality in which on one side the artist commands with the technique of his brush, but one the other side it’s often the paintings that demand the artist to evolve in style [which could lead to the reflection that Lacan does about the painting/portrait gaze and how it has agency in the relationship with the spectator, ndr.]

VB: You currently live and work in Berlin, which is such a peculiar city, both from the historical and cultural side. As an art historian, I can’t help connecting your series “The Gathering” with the work of German expressionism but correct me if I’m wrong. Has living in Berlin shaped your practice? How are you negotiating your experience there?

JH: You are right to point out the influence of German expressionism in my style, but then again, I must admit I was influenced by pretty much every artist in the long lineage of history of art that I had the chance to come across. I believe each artist endeavours to give an answer to the question of what art is, on a canvas. And these answers, accumulated in the course of time, make up the History of Art as we know it today. During this evolution in time, materials change, techniques are improved, information and data can change, and technology evolves one way or another. I think my paintings are also influenced by all these evolving factors and still changing and evolving in time. And definitely, I chose to live in Berlin because I think it’s a city where one can find the right balance between the commercial art scene and the experimental attempts in art, and the range/scope of cultural benefits is considerably larger compared to any other place I’ve been to.





Gesichter ohne Namen


Yi Hyun
Editor in Chief
Art in Culture



<Passersby, Difference and Repetition> / Öl auf Leinwand, 259.1×193.9cm, 2015

<Passersby, Unmask> / Öl auf Leinwand, 90.9×72.7cm, 2016

    Der Fotograf Suntag Noh sieht das Gesicht als standardisierendes Kriterium, eine Person als Individuum zu identifizieren: „… der einzige Körperteil, der als Äquivalent zum Namen einer Person gesehen werden kann, ist das Gesicht.“ Das Gesicht ist nicht nur die Vergegenwärtigung der einzigartigen Identität einer Person, sondern auch ein untrüglicher Beweis dafür, dass diese Person existiert hat. Auch wenn die Personen, die in einer Ausstellung fotografisch dargestellt sind, gänzlich unbekannt sind, genügt die Existenz einer porträtierenden Fotografie als Beweis, dass diese Personen zu einer gegebenen Zeit gelebt haben. Das menschliche Gesicht ist das einzige Studienobjekt des Künstlers Jaeyeol Han. Doch anstatt realistische Ebenbilder zu erzeugen, bildet er Personen in namenloser Anonymität ab. Jaeyeol malt Gesichter, deren Namen getilgt wurden.


〈Passersby, Outrageous〉 / Oil Stick auf Leinen, 25×35cm, 2013

    Jaeyeol beobachtet Gruppen von Menschen und skizziert die charakteristischen Besonderheiten interessanter Gesichter innerhalb weniger Minuten. Diese Skizzen dienen später als Basis für die Werke, die in seinem Studio entstehen. Ohne das Wissen, dass sie beobachtet werden, geben einige Passanten für einen Augenblick tiefe Einsicht in ihre Gefühle und Stimmungen. Genau diese gefühlsmäßigen Momentaufnahmen werden zu unverwechselbaren Gesichtsausdrücken, die wiederum später als Leitmotiv in Jaeyeols Werk wiederbelebt werden. Jaeyeol beschreibt es so: „Ich eröffne die Möglichkeit, den Gesichtern Leben einzuhauchen, die allzu leicht übergangen oder ignoriert werden können. Ich versuche eine neue Perspektive in unserem modernen Zeitalter zu schaffen, in dem sich Menschen oft passiv begegnen – über Telefon oder Facebook –, anstatt sich in der realen Welt zu treffen, von Angesicht zu Angesicht.

    2010, als Jaeyeol seine Reihe “Passersby” in Irland begann, arbeitete er mit Leinwänden in A4-Größe (8,27 x 11,69 inches). Einerseits konnte er so mehr Werke fertigstellen,andererseits waren die porträtierten Gesichter fast in Lebensgröße, was den Eindruck einer „Personengruppe“ entstehen ließ, wenn die Werke gemeinsamausgestellt wurden. Später wurden seine Bilder größer als zwei Meter. Jaeyeol arbeitet mit Oil Sticks, die als Verlängerung der Bewegung von Schulter zu Arm und letztendlich zur Leinwand fungieren. Je größer die Leinwand, desto dynamischer sind die Körperbewegungen des Künstlers. Der Fokus liegt hierbei auf der Erforschung der fundamentalen, der Malerei innewohnenden Möglichkeiten. Zu diesem Zweck malt Jaeyeol die Gesichter in der Reihenfolge Knochen, Muskeln, Körperfett und Haut, um so die somatischeStruktur seiner Vorlage ausdrücken zu können.



〈Passersby, In silence〉/ Öl auf Leinwand, 190×130cm, 2013

    Er sieht seine Arbeit als “beides, Malerei und Bildhauerei zur gleichen Zeit“. Das Impasto ist charakteristisch für seinen Stil. Das daraus resultierende Gefühl von Tiefe in Kombination mit hellen, ausdrucksstarken Grundfarben erzeugt Authentizität. Die charakteristischen Merkmale seiner Vorlage, die sie umgebende Atmosphäre und der Lichteinfall dienen als Ausgangspunkt für die Werke. Jaeyeols Farbauswahl ist eine Symbiose aus einer Anlehnung an Goethes Farbtheorie und seinem eigenen Instinkt. Er sieht die Reihe „Passersby“ als Prolog einer Geschichte, die ihn sein ganzes Leben begleiten wird. Jede Person, die er in einem seiner Werke eingefangen hat, spielt eine ganz bestimmte Rolle innerhalb dieser Geschichte. Welche Rolle ein bestimmtes Porträt hierbei spielt, bleibt dem Betrachter selbst überlassen. Ob Fahndungsfoto, Fotografie oder gemaltes Porträt, wir sind ständig mit einer überwältigenden Anzahl an Gesichtern konfrontiert, denen wir jedoch kaum Beachtung schenken oder uns gar weigern, uns an sie zu erinnern. Jaeyeols Arbeit gibt uns die Möglichkeit, die Rolle des menschlichen Gesichts in unserer modernen Gesellschaft zu überdenken, etwas das trotz seiner unentbehrlichen Wichtigkeit oft in die Sphäre der Peripherie verbannt wird.


November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