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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열과의 대화: 재난에서 태어난 예술, 얼굴 없는 초상의 심리학, 그리고 색채의 중요성

서울 갤러리 BK에서 열린 《The Gathering; Bystanders》 전시에 관한 대화

“내가 심연으로 떨어질 때면,
나는 머리를 아래로, 발뒤꿈치를 위로 한 채 곧장 그 속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내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쁘며,
그 모습이 내게는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리하여 바로 그 수치 속에서 나는 문득 찬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

한재열의 작업에 관하여

내가 아무리 강조해도 질리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는 자신과 공명하는 예술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재열의 예술은 예술과 관람자 사이, 더 나아가 예술과 예술가 사이에 존재하는 이 놀라운 연결에 대한 나의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미술사는 예술이 카타르시스와 용서, 해방의 과정과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으며, 때로는 누군가가 기적적이라 부를 법한 경험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거듭 가르쳐 왔다. ‘기적을 행함’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θαυματουργία에서 유래한 표현처럼 말이다.

한재열은 비극에 대한 반응으로 예술가의 여정을 시작했다. 2010년 군 복무 중 아이티 대지진의 재난 대응 임무에 참여한 것이다. 삶을 규정한 이 순간 이후, 작가는 사람뿐 아니라 사람의 외양 뒤와 그 너머에 있는 것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얼굴과 성별, 인종과 피부색을 넘어 인간성의 가장 깊은 의미를 통찰하는 시선을 탐구하게 된 것이다. 신체적 특징에서 해방된 한재열의 추상표현주의적 얼굴들은 감정과 심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에 괴테의 논쟁적인 색채론과 작가가 직접 안료를 만드는 능력에서 비롯된 색채 연구가 더해진다. 초상에 관한 이러한 탐구는 ‘Passersby’ 연작 전체를 통해 제시된다. 이 제목은 아일랜드에 머물던 시기에 생겨난 사람 스케치에 대한 그의 열정을 암시한다.

이 탐구는 갤러리에 소개된 두 번째 연작인 ‘The Gathering’에서 한층 더 진화한다. 이 연작에서 초상은 몸을 얻고, 재난 현장을 재해석하고 다시 상상한 맥락 속에 놓인다. 정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이 만나며, 생생한 색채 선택으로 빛나는 대형 회화 안에서 하나가 된다. 이는 강렬하고 충격적이면서도 동시에 내밀한 대화다. ‘Passersby’ 연작이 두터운 붓질의 질감으로 탐색한, 인간 개개인의 고유한 실존이라는 소우주를 관람자가 점점 더 가까이 들여다보도록 이끈다면, ‘The Gathering’ 연작은 회화에서 관람자를 향해 뻗어나가는 하나의 도약이다. 생동하는 색의 안료를 통해 자신의 공간과 관심을 거칠게 요구한다.

한재열의 전시는 내게 《오디세이》의 노스토스(Nostos, νόστος)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사건과 사람, 도시와 여행, 영감이 이어지는 순환 속에서 타인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 모든 것은 캔버스 위 유화의 붓질 하나하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이는 찰나와 덧없음을 포착하는 일이자, 작가가 마주치는 모든 것 너머의 무언가를 찾는 탐구다.

나는 전시에 둘러싸인 갤러리 BK에서 작가와 직접 이 모든 것에 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기쁨을 누렸다. 무척 흥미롭고 풍요로운 여정이었다. 그 대화는 작가의 작업 뒤에 얼마나 많은 사유와 연구가 놓여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또한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와, 그 세계를—궁극적으로는 우리 인간을—이해하려는 여러 학문을 향한 작가의 깊은 호기심과 섬세한 감수성을 드러냈다.

한재열과의 대화

VB: 갤러리 BK 전시의 큐레이터 글을 읽으며, 작가님의 예술이 삶의 아주 특별한 시기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0년 군 복무 중 아이티 대지진에 대응했던 경험과 관련된 시기였지요. 그 경험과, 그토록 강렬한 사건 속에서 예술적 실천을 발견하게 된 과정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좀 더 듣고 싶습니다. 오래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카타르시스를 일으킬 수 있다고 가르쳤고, 모더니스트들은 예술이 반드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물리적이든 은유적이든 폐허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생겨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님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JH: 제가 아이티에 있었던 때는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였습니다. 제 삶에서 겪으리라고는 상상도, 예측도 하지 못했던 위기 뒤에 폐허와 사람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깥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는 것뿐이었습니다. 사람은 흔히 겉으로 드러난 것,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에 의해 규정됩니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우리가 자신을 어떤 존재라고 느끼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보이거나 겉으로 드러난 것이 아닙니다. 피부색도 아니고, 몸을 이루는 근육도 아닙니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가 아니라, 스스로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의해 규정됩니다. 사람에 대한 저의 관심은 거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VB: 저는 특히 캔버스 위에 쌓인 작가님의 질감 표현에 매료됩니다. 붓질의 층이 드러나고, 일종의 질감적 표현주의가 물질성을 통해 관람자에게 다가가면서 강한 힘을 얻게 되지요. 저는 예술가가 선택하는 기법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의 본질적인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어떻게 지금의 양식을 발전시켰나요? 그리고 그 양식은 작가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JH: 1층에 전시된 ‘Passersby’ 연작에서 저는 인류학자처럼 얼굴, 머리, 몸 등에 초점을 맞추며 상징을 수집합니다. 그런 다음 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모든 사회적 특징을 제거합니다. 예를 들어 민족성, 성별, 나이는 모두 제쳐둡니다. 제가 집중하는 것은 물질적 측면, 즉 서로 대립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각자의 존재감을 강조하는 조형 요소들의 충돌입니다. 곡선과 곧은 선의 붓질, 넓음과 좁음, 빠름과 느림, 평평함과 두꺼움이 만들어 내는 역동적인 충돌 같은 것들입니다. 이 과정에서 추상적이고 표현적인 질감이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회화를 준비하며 그린 드로잉 역시 제 양식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직접 안료 막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재료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이는 제 전반적인 표현 양식을 더욱 폭넓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VB: 갤러리 BK 전시에서는 ‘The Gathering’과 ‘Passersby’, 두 연작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갤러리 1층에서 볼 수 있는 ‘Passersby’ 연작부터 살펴보고 싶습니다. 이 연작이 아일랜드와 유럽에서의 경험, 그리고 사람을 스케치하는 작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또한 작가님의 작업에서 매우 독특한 ‘얼굴 없는 얼굴’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제 감각으로는 얼굴의 신체적 특징, 어쩌면 페르소나까지 부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감춰져 있던 감정과 인간 심리의 광대한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는 듯합니다.

JH: 스페인어에 ‘이마고(imago)’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유충이 탈피하고 남긴 허물을 가리킵니다.2 이 단어는 ‘이미지(image)’라는 말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고대 로마 시대의 이마고는 죽은 사람의 얼굴을 밀랍으로 본떠 그를 기억하기 위한 가면을 만드는 전통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거쳐 유족의 집 벽에 걸린 밀랍 가면은 고인과 가족의 관계를 나타내며, 그의 존재를 대신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가면이 얼굴을 대신해 얼굴 자체가 되고, 그에 따라 고인의 정체성까지 대체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회화 작업 과정에서 이 전통으로부터 영감을 얻습니다.

아일랜드와 특별하거나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제가 화가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시험하면서 예술가로서 여러 실험을 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Passersby’ 연작은 그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당시 저는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완전히 혼자였고, 그림을 그리고 스케치하는 일이 제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낯선 사람과 스쳐 지나가지만, 그중 누구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자기 삶의 중심에 선 주인공입니다. 저는 스쳐 가는 무수한 낯선 사람들을 눈으로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을 약 30초 동안 바라본 뒤, 본 것을 바탕으로 빠르게 스케치했습니다. 그리고 작업실로 돌아와 기억에 남은 것과 스케치를 토대로 그날 마주친 사람들의 초상을 그렸습니다. 모든 세부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얼굴의 강렬한 특징에 집중할 수 있었고, 실제로 겉에 드러난 특징 너머에서 순간적으로 포착한 인상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VB: 갤러리 공간에 소개된 두 번째 연작은 ‘The Gathering’입니다. 전시 글에서는 작가님이 재난 이미지 아카이브에서 자료를 가져와 변형하고 재배열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연작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생각을 들려주시겠어요?

JH: 2층에 전시된 ‘The Gathering’ 연작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미지 과잉 시대의 증언입니다.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를, 겉으로 드러난 것의 뒤편을 보려는 시도입니다. 개별 인물의 초상에서 점차 여러 사람, 나아가 사람들의 집단을 그리는 쪽으로 옮겨가면서, ‘회화적 회화’의 경계 안에서 표현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여러 방법을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물감과 안료를 직접 만들고 다양한 종류의 재료를 탐구하는 일이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서로 무관한 이미지들을 ‘몽타주’ 방식으로 조합하고 병치해, 각 이미지의 서사가 다른 이미지의 서사와 충돌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Passersby’ 연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자 제 역사적 시간대의 목격자로서 역사적 기록 영상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영감의 정확한 출처는 가능한 한 감추려 했습니다. 이러한 모호함을 통해 관람자는 자신만의 서사를 상상하는 데 필요한 여백을 확보하고, 이미지들이 서로 대화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고다르, 에이젠슈테인, 하룬 파로키 같은 감독들이 몽타주를 구성하듯 이미지들을 나란히 배치합니다.

VB: 이 연작에는 여러 층위가 함께 작용하는 듯합니다. 이를테면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영역이 있는 한편, 밝은 색채가 지닌 생동감과 감각성도 있습니다. 그 색들은 공간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려는 듯 거의 공격적으로 다가옵니다. 색을 선택하는 방식과 그것이 이 연작을 통해 전달하려는 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좀 더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JH: 저는 괴테의 색채론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과학적이라고 할 수 없고, 색에 대한 상당히 개인적이고 직관적인 분석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회화적 상상력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괴테를 염두에 두고 빨강, 노랑, 파랑이라는 세 가지 기본색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그로부터 여러 변주를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캔버스 위에서 역설적으로 각자의 존재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드는 질감 요소들의 충돌을 늘 생각했습니다. 색에 대한 제 생각은 궁극적으로 색상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각 색의 명도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VB: 지금까지 다루지 않은 내용 가운데, 전시된 두 연작과 관련해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JH: 저는 ‘Passersby’ 연작을 10년 넘게 작업했고, 이번 전시는 어떤 의미에서 그 연작의 마무리입니다. 갤러리 BK 전시를 통해 새로운 연작인 ‘The Gathering’을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어느 순간 ‘Passersby’ 연작의 얼굴 하나하나가 몸을, 그리고 더 넓고 총체적인 서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한편으로는 작가가 붓의 기법을 통해 작품을 지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회화가 작가에게 양식의 진화를 요구하곤 한다는 이중성이 흥미롭습니다. [이는 회화와 초상의 응시, 그리고 그것이 관람자와의 관계 안에서 어떻게 행위성을 갖는지에 관한 라캉의 사유로 이어질 수 있다. 편집자 주]

VB: 작가님은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독특한 도시이지요. 미술사가인 저는 ‘The Gathering’ 연작을 독일 표현주의 작업과 연결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제가 잘못 짚었다면 말씀해 주세요. 베를린에서의 삶이 작가님의 작업 방식에 영향을 주었나요? 그곳에서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JH: 제 양식에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이 있다고 지적하신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다시 말해, 제가 접할 기회가 있었던 미술사의 긴 계보 속 거의 모든 예술가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각 예술가가 캔버스 위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노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 축적된 그 답들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사를 이룹니다. 이러한 시간적 진화 속에서 재료는 바뀌고, 기법은 발전하며, 정보와 데이터도 달라질 수 있고, 기술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진화합니다. 제 그림 또한 끊임없이 변하는 이 모든 요소의 영향을 받으며, 시간 속에서 여전히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베를린을 삶의 터전으로 선택한 것은, 그곳이 상업 미술계와 예술적 실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을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가본 어느 곳과 비교해도 누릴 수 있는 문화적 자원과 기회의 폭이 훨씬 넓습니다.

https://artnomademilan.it/han-jaeyeol/?lang=en


1. Fyodor Dostoevsky, The Brothers Karamazov, pt. 1, bk. 3, chap. 3. (제1부 제3편 제3장) ↩
2. 편집자 주: 곤충학에서 imago는 유충이 탈피하고 남긴 허물이 아니라 성충을 뜻한다. 이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imago(이미지, 형상)이다. 이 대담에서는 인터뷰 당시의 표현을 그대로 두었다. 참고: "imago," Merriam-Webster, https://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imago; "imago," Online Etymology Dictionary, https://www.etymonline.com/word/imago. ↩